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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54

사이판 전투와 만세절벽 ! B-29 폭격기 , 절대방어선

사이판 전투 일본이 "전쟁의 패배를 인정해야 해야만 했던 순간이 언제 였을까?" 물어본다면 많은 전문가들은 '사이판 전투'라고 대답한다고 하는데요 이는 사이판이 함락되었을 당시 '후쿠도메 시게루' 해군 중장의 발언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사이판을 잃었을 때 마지막 기회가 사라져버렸음을 깨달았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1942년 남태평양 해전 이후 1년 8개월 동안 일본과 미국 사이의 항공모함을 동원한 직접적인 해전은 없었습니다. 이 공백기에 미국은 완벽하게 전시 경제로 전환을 했는데요.. 두 달 만에 한척꼴로 정규 항모가 찍어져 나오는 미국을 일본을 더이상 상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참패한 이후 인도네시아, 뉴기니, 필리핀, 캐롤라인 제도, 마리아나 제도, 오가사와라 제도로 연결되는..

미드웨이 해전. (2/2) 결전의 날. 세계사를 바꾼 5분.

결전의 날. 1942년 6월 4일 태평양 1942년 6월 4일 오전 10시 25분 일본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5분후... 10시 30분 승기는 완전히 미국 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는데요.. 지금까지 그 어떠한 순간도 이보다 빠르게 역사가 뒤집어진 순간은 없다고 하는 바로 그전투~!! 미드웨이 해전 입니다. 1942년 6월 4일 새벽 일본군 함대는 미드웨이에서 400 km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본군은 이제 미드웨이를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요 항공모함 4척에 당시까지만 해도 더 뛰어나다고 평가받던 함재기들이 있었고 조종사들도 진주만과 산호해 해전을 격은 베테랑 들이였으니 전황은 일본군이 훨씬 유리해 보였습니다. 6시 20분 일본의 항공모함 4척에서 일제히 함재기들이 날아올..

미드웨이 해전 ! (1/2) 물러설수 없는 운명의 결전.

미드웨이 해전 1편 결전의 서막 둘리틀 특공대에 의해 본토를 공격받은 일본은 미국의 해상 전력을 박살 내지 않으면 언제든 도쿄나 천황의 궁전에 폭탄이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에 빠졌습니다. 연합함대 사령관인 '야마모토 이소로투' 제독은 진주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미국의 항공모함 전대를 다시 한번 공격해서 완전히 끝장낼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는데요.. 둘리틀 특공대의 도쿄 공습은 야모모토의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줬습니다. 야마모토의 전략은 미국의 함대를 진주만에서 끌어낸 뒤 결정적인 해전을 통해 니미츠의 태평양 함대를 전멸시키겠다는 것이였어요.. 미국의 함대를 진주만에서 끌어내기 위해서 야마모토는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미국령 산호섬을 공격하기로 했는데.. 바로 미군의 중요한 비행장이자 급유기지..

둘리틀 공습. 진주만과 미드웨이 사이 !

진주만 공격으로 인해 미군의 사기는 땅에 덜어졌습니다. 막을 수도 있었던 일본의 공격에 슬퍼하고 또 스스로 자책했습니다. 그리고 미군과 미국 시민들은 분노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태평양함대의 지휘를 맞게된 사령관이 바로 니미츠 였습니다. 니미츠는 장황한 연설을하고 선동하는 대신 조용히 사람들을 달래고 감싸안았습니다. 미국은 아시아에서 날뛰고 있는 일본을 그냥 두고보고 있을수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더이상 전함을 잃는다면 미국에게는 치명상을 입게되는 것이였는데요 자신들의 해군 전력을 보호하면서 일본을 공격해야 했기에 니미츠는 신중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이였던 루즈벨트의 생각은 달랐지요.. 그는 곧은 대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성난 미국 시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만 했습니다. 자국의 영토을 공격당하고도..

필리핀 탈환전. 맥아더의 복수 (레이테만 상륙작전)

필리핀을 망치기 시작한 일본 일본은 남방 작전을 계획했을 때부터 세 가지 방침을 정했는데요.. 첫 번째는 남방작전의 기본목표인 자원 확보로 최대한 자원을 확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점령지 군대는 일본 본국의 보급에 의존하지 말고 식량과 물자를 현지에서 조달하라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치안확보라는 이름으로 저항하는 현지 주민들은 억압하고 강격 대응을 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필리핀을 점령하자마자 일본은 필리핀이 쓰던 화폐를 폐지하고 군표를 찍어서 뿌려댔는데요.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일본이 필리핀에 들어온 지 3년이 안돼서 필리핀의 물가가 100배까지 뛰어오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이 불과했는데요, 일본군은 필리핀의 경제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본국에서 보급을 받지 못하는 필리핀 주..

무사도와 전진훈이 만든 바탄 죽음의 행진

바탄 죽음의 행군의 이유 맥아더가 호주로 도망간 이후 바탄반도에 남겨진 미군은 결국 일본군에 항복을 하게 되는데요.. 포로가 되는것을 명예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본군은 미군 포로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120km 떨어진 오도넬 수용소까지 물과 식량도 제대로 주지 않으며 행군 하도로 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승리했지만 보급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포로들의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는데요 일본군 참모가 포로를 엄중히 감시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조작해 포로를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려 일본군은 실탄과 운송수단이 필요없는 죽음의 행진을 계획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본의 이런 만행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사도나 진진훈 같은 개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무사..

필리핀에서 도망친 맥아더 장군. (바탄전투)

독선의 맥아더. 태평양전쟁 직전 맥아더는 신생 필리핀군의 군사고문이자 필리핀 육군 원수이기도 했습니다. 맥아더는 여러모로 필리핀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필리핀 군사령관 이었고 맥아더 자신도 필리핀에서 두 차례나 근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맥아더는 제1차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이었는데요.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단장을 맡기도 했었고 미군 사단장가운데 가장 많은 열다섯 개의 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공황시기 퇴역 군인들이 1945년 지급하기로 한 보너스를 조기 지급해 달라고 평화적인 시위를 한적이 있었는데.. 이 시위대를 탱크를 동원해 밀어 버릴 만큼 아주 독선적인 사람이었다고 해요. 맥아더는 이 시위대는 공산혁명을 일으키려는 '빨갱이'라고 주장을 했는데요 사실 이 사람들은 그저 배고 ..

진주만 공격이 욕을 먹는 이유.(대환장 선전포고문)

미국의 최후통첩, 헐 노트 ( Hull Note) 1941년 11월 26일 미국은 일본에게 최후통첩을 날리는데요 바로 당시 미국의 국부 장관 코델 헐 (Cordell Hull) 이 주미 일본대사 노무라 구루스에게 전달했던 헐 노트입니다.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은 조건이었고 미국 정부도 일본이 헐 노트의 내용을 받아들일 것 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조건을 던진 것이었을까요? 이유는 미국은 일본의 외교 암호를 이미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주미 일본대사는 본국으로부터 두 가지 카드를 전달받았는데요.. 첫 번째는 '일본군을 제한적으로 철수하고 중일전쟁을 종료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일본에 석유 수출만 재개한다면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군대를 ..

왜 '진주만' 이어야만 했을까 ?

진주만 이어야 했던 이유 미국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정도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필리핀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고 일부는 미드웨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 진주만을 노릴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고 해요. 일단 일본에서 진주만까지는 3000 해리가 넘었기 때문에 미군의 감시를 뚫고 3000 해리를 넘어온다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일단 뚫고 넘어와도 진주만에 있는 미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진주만에 주둔해 있던 미군 지상군 병력만 5만 9000명 수준이었고 하와이에 배속된 전투함만 보더라도 전함 9척,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18척, 구축함 54척, 그리고 잠수함만 22척이나 되었거든요.. 여기에 해군의 항공기 수만 4..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 (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 )

'동양의 신비' 제로센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성공과 실패를 함께한 일본 최고의 전투기" "1만 939 대를 생산하면서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전투기" "일본 스스로 "동양의 신비"라고 치켜세우며 자랑하는 전투기 " " 현재까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전투기" 바로 제로센입니다. 태평양전쟁은 이 제로센 전투기의 화려한 등장과 몰락으로 볼 수 있는데요.. 제로센은 제국주의 일본의 영광과 몰락을 보여주는 표식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항공기는 한 나라의 기초과학, 공학, 공업 기술, 산업 역량을 모두 투입해야만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집약체인데요.. 그래서 항공산업은 그 나라의 공업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여겨진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전투기 개발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의 모든 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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