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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54

이시국에 일본 근대사에 관심이 가는이유..(국제정치의 냉혹함)

요즘 일본이 근대화로 성장하게 되는 상황과 태평양전쟁을 거치며 몰락해가는 과정에 대해 나름대로 알아보고 포스팅을 이어나가 려고 하고 있는데요.. ^^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일단 재밌습니다. 일본이란 나라 참 재밌는 나라인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들을 보면 '얘네들은 도대체 왜 이러나..' 싶기도 한데요.. 관련 자료들을 읽다 보면 우리 조선시대와 비교도 되고.. ' 왜 이런 놈들이 그 당시 동아시아에서 혼자 잘 나갔을까? ' 궁금증도 조금씩 풀리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과 정들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 국제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게 됩니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도올 김용옥 선생이 아주 오래전 강연했던 '동아시아 30년 전쟁'이라는 강연을 본 적이 있었는데요.. 저에게..

사카모토 료마의 삿초동맹과 도쿄의 탄생

1856년 중국은 2차 아편전쟁에서 또다시 패배하면 서 굴욕을 당하게 되고 이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미국은 겁을 먹은 일본에게 새로운 조약을 맺도록 강요했고 1858년 미일 수호통상조약 이 맺어지게 되는데요.. 이에 질세라 영국, 러시아 , 프랑스, 네덜란드도 새롭게 일본과 통상조약을 맺었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다 들어준 것이었어요.. 이를 지켜본 웅번들은 '무능한 막부가 일본을 망하게 하고 있다'라고 하며 막부에게 빼앗긴 정권을 덴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막부와 웅변의 대결이 시작되었고 1858년 사쓰마와 조슈 등 웅변의 인사 100명이 막부에 의해 처형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안세이 대옥'으로 불립니다 웅번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

웅번의 성장과 일본개항 쿠로후네 사건.

겐로쿠 호황의 시대를 지낸 일본은 이대로 계속 발전할 것처럼 보였지만 잦은 자연재해와 기근으로 인해 농민반란이 일어나는 등 문제가 자꾸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자연재해로 쌀값이 폭등하면 조닌 계급의 계급의 삶이 힘들어졌고.. 월급을 쌀로 받아 돈으로 바꾸어 생 활을하던 무사계급은 반대로 쌀값이 떨어지면 살기 힘들어지게 되었거든요.. 막부의 쇼군과 지도자 들은 이런 상황을 이겨 내고자 여러 가지 정책들을 시행하면서 성장과 정체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다 1833년 집중호우와 냉해로 또 다시 식량부족에 직면한 일본의 농민들은 봉기를 일으키게 되는데요 당시 매일 200 명씩 죽어나갔다고 해요.. 이때는 무사들까지 반란에 합류하게 되는데..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막부는 엄격한 풍속 통제와 물가 통제를 이어..

일본 에도시대 상업의 발전과 퇴폐적문화.(겐로쿠 시대)

일본에서 상공업자들을 조닌이라고 불렀는데요.. 처음에는 무사계급에게 물품을 대줄 목적으로 성안의 좁은 쪽방에서 살던 조닌 계급은 에도시대 상업의 발전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일본 사회에서 막강한 실력자로 부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메이지유신'이후에는 유럽의 부르주아와 같이 무사계급을 뒤집고 사회의 주도권을 잡게 되기도 하지요.. 아무튼 일본은 에도시대로 들어오면서 오랜 기간 평화가 지속되었고 무사보다는 상인들의 세력이 점점 커져가게 됩니다. 일종의 인질 제도였던 참근교대제로 에도에 들어와 있던 무사들은 직접 밥을해 먹지 않았으며 집들이 바짝 붙어있는 에도의 주거지 특성상 집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해먹지 않았는데요.. 이들이 밖에서 음식을 사먹게 됨에 따라 음식점, 포장마차, 노점상들의 영업이 성업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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