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 이야기 109

고려거란전쟁 1. 서희의 담판과 강동6주

거란의 성장. 긴장의 시작 거란은 오래전부터 몽골 초원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유목생활을 하던 부족인데요 고구려 시대에는 광개토대왕에게 정벌을 당한 적이 있었고요.. 대조영이 여진족과 함께 당나라를 탈출해 발해를 세울 때도... 바로 이 거란족의 반란을 틈타 탈출 할 수 있었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거라은 고려가 세워졌을 때 한반도 북쪽에서 서쪽 편에 살고있었습니다. 동쪽엔 여진족이 흩어져 살고 있었고요... 그러던 10세기 초 거란에는 "아율아보기"라는 뛰어난 지도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흩어져 있던 거란부복을 하나로 모으고 나라를 세웠는데요.. 바로 "요" 나라였습니다. 아율라보기가 요나라를 세운 이후 거란은 무서운 속대로 주변을 정복해 나갔는데요 발해도 이때 거란의 침공에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것이였어..

노비안검법의 광종..달의연인 보보경심 려의 배경

왕건의 죽음. 고려를 통일한 왕건은 호족등 지방세력과의 결혼동맹, 성씨, 관직 나눠주기 등의 방법으로 나라를 안정시켜 갔는데요.. 지방세력가들의 권한을 인정해 주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새나라 고려의 확실한 신하가 되도록 만들어 갔던것 이였습니다. 하지만 통일 이후에도 많은 일을 하던 태도 왕건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는데요.. 태조는 자신의 뒤를 이을 왕들과 신하들이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후손들에게 남길 가르침을 일일이 적어 물려주도록 했으니 이것이 바로 훈요10조입니다. 훈요10조! 불교를 중요시하되 그 힘이 지나치게 커지지는 않도록 할 것,좋은 신하들을 곁에 두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할것, 외국과의 관계를 맺고 교류를 해 나가 알 때 참고할 점.. 등등이었습니다. 혼돈의..

고려왕 계보와 업적. 고려시대 구분

개막 고려시대 태조 왕건이 918년 건국한 고려는 1392년 마지막 왕인 공양왕까지 총 34대에 거쳐서 475년 동안 존속했는데요. 고려시대를 구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구분합니다. 초기고려시대 (918년 - 1170년): 고려의 건국부터 천리장성 건설 완료까지의 시기로, 왕조 수립과 국가 기반 확립의 시기. 중기고려시대 (1170년 - 1259년): 국가 기반의 안정과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는 시기.. 후기고려시대 (1260년 - 1392년): 몽골의 침입으로 인한 국가적 위기와 문화적 위축이 일어나며 쇠락하는 시기 고려시대를 처음부터 찬찬히 들여다보기전에 각시기별로 고려왕의 순서와 간단한 설명을 찾아보았습니다. 초기 고려시대 1대 태..

궁예는 정말 폭군이였을까..?

도망친 신라 왕족 궁예는 신라의 왕족이라는 말이 있지만 실제 왕족이었는지 아니면 궁예가 지어낸 이야기 인지는 확실 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알려진 이야기로 는 궁예는 5월 5일 단옷날 왕족으로 태어났다고.... 궁예가 태어나는 날 하늘에 신비로운 빛이 일었고 신생아의 입에 이가 돋아나 있었다고 해요 왕은 신하에게 이게 좋은 징조인지 물어봤지만 애석하게도 신하는 아이가 자라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라는 나쁜 징조라고 이야기합니다. 왕은 아이를 죽이라고 명령하지만 던저진 아기를 유모가 간신히 살려냈는데요.. 이때 손가락으로 눈을 찔러 한쪽눈을 실명했다고 해요.. 유모는 궁예를 데라고 도망가 살았고 이 내용을 나중에 알게 된 궁예는 신라 왕실에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후고구려 궁예 등장 궁예는 강원도에 있는 ..

견훤과 SM엔터테인먼트 사태. ( Feat 이수만, 방시혁 )

견훤 VS 이수만 요즘 하이브가 SM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다는 이야기다 나오면서 이수만을 중심으로 한 존 세력과 이수만의 처조카를 중심으로한 2세대간의 권력 다툼이 심해지는 것 같은데요.. 저는 지금의 이수만의 상황을 보면 후삼국 시대 견훤이 떠오릅니다. 견휜은 군대를 지휘하던 장군으로서 군사적 경험을 되살려 자신의 나라를 세웠는데요.. 이수만도 스스로 가수로서 연예계에서 오래 생활하다가 자신의 회사를 차렸지요.. 견훤은 신라를 공격해 경순왕을 죽이고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는데 성공을 하지만 자신의 아들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게 됩니다. 이수만도 국내 최고의 기획사 사장으로서 수많은 인기 가수들을 길려내며 화사를 크게 키우지만 자신의 가족에 의해서 내쫓기게 된 상황인데요.. 이수만이 하이브 방시혁에게 지분을..

도선국사의 풍수지리. 신라를 무너뜨리다

선각국사 도선 도선 (道詵, 827년 ~ 898년)은 신라말기의 승려로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서 15세에 승려가 된 이후 전국을 돌아다미며 수행하며 이치를 깨달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지고 있는 이유는 바로 당시 그가 음양풍수지리설의 대가로 이름을 날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풍수지리학의 역사가 신라시대로 올라가는 것은 바로 도선이 신라시대 인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천년왕국 신라가 혼란기에 접어들면서 불교에도 큰 변화가 불기 시작했는데요. 권위와 형식을 중시하며 중앙집권 세력들 사이에서 전성기를 누려왔던 교종에 반해 스스로 사색하여 진리를 깨닫는 것을 강조한 것이 바로 선종 (구산선문) 이였습니다. 참선을 중요시 하는 선종의 가진 사상적 특성 때문에 선종은 주로 고요..

시무10조. 최치원과 함양의 상림공원

최치원과 시무10조 신라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 최치원은 6두품 출신이었는데요.. 골품제 사회였던 신라에서는 성공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최치원의 아버지는... 똑똑했던 아들 최치원이 12살이 되던 해 당나라로 유학을 보내버립니다. 최 치원의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라로 보내면서 10년 안에 당나라 빈공과에 합격해야 한다고 누누이 당부를 했다고 해요. 12살이면 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인데.. 어린 아들을 유학을 보내면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돌아오지도 못하게 했다는 건 너무 심했던 것 같긴 하네요.. 당나라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치르던 과거시험이 바로 빈공과인데.. 최치원은 아버지가 말한 10년이 아닌 6년 만에 장원으로 급제를 해버립니다. 그리하여 18세부터 당나라에서 관직생활을 시작한 최치원..

동북공정의 중심.. 발해역사 ! 중국, 일본, 러시아.

동북공정 중국의 한족들은 오래전부터 자기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며 나라 이름도 어울리지 않게 중국(中國)이라고 하기까지 했는데요.. 자기들 기준으로 동쪽은 동이, 서쪽은 서융, 남쪽은 남만, 북쪽은 북적으로 부르며 주변 사람들은 모두 오랑캐라고 했지요.. 하지만 근대로 들어오면서 저 서쪽 티베트, 신장 위구르에서부터, 내몽골, 만주까지 중국의 영도로 인정이 되면서 이놈들이 이제는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중국으로 정체성을 통일하기에는 중국 땅에는 너무 많은 이민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데요.. 이들을 억지로 하나로 묶으려고 하다 보니.. 이제는 이민족들의 역사가 다 다 자기들의 것인 것처럼 포장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엔 테벳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서남공정을 했었고요.. ..

해동성국 발해!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

발해 무왕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진이라는 나라를 건국하였고 713년 당나라도 이를 인정하고 대조영에게 '발해군왕'이라는 칭호를 주었는데요.. 이때부터 발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당나라 입장에서도 발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이유는 바로 요서지방의 돌궐이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한 돌궐에게 대조영은 손을 내밀었고 당나라는 돌궐과 발해가 힘을 합치는 꼴은 볼 수가 없으니 발해와 더 이상 각을 세우려 하지 않은 것이지요.. 대조영이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 대무예가 두 번째 왕이 되었으니 바로 무왕입니다. 무왕은 당연히 무력을 주변을 정복하고 영토를 드넓힌 왕이 되시겠는데요.. 무왕은 왕이 되자 발해 북쪽의 흑수말갈을 공격하여 북쪽의 안정을..

대조영! 발해 건국의 과정. 고구려 디아스포라

고구려 유민 , 디아스포라 668년 고구의 평양성이 당나라에게 함락당하면서 고구려는 대부분의 땅을 당나라에게 빼앗기게 되었으며 수많은 고구려 귀족들과 백성들은 당나라로 끌러가게 되었습니다. 당나라 입장에서는 고구려 유민들이 한 곳에 뭉쳐 있으면 언제 다시 뭉쳐 일어나 당나라에 맞설 수도 있는 상황기 때문이었는데요.. 수많은 고구려인들이 고향에서 떠나 뿔뿔이 흩어져야 했던 상황은 수천 년간 살아온 땅에서 로마에 의해 흩여져야 했던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를 생각나게도 하는데요. 이때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들이 수십만에 이르렀고 발해의 시작은 바로 이 고구려 유민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고구려 유민은 아주 먼 중국 서쪽 간쑤 성이나 양자강 남쪽의 황폐한 땅으로 끌려 갔고 일부는 옛 고구려 땅에서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