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한국사 아는척하기 ( 이땅의 사람들)

시무10조. 최치원과 함양의 상림공원

기차타고시베리아 2022. 12. 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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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과 시무10조

신라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


최치원은 6두품 출신이었는데요.. 골품제 사회였던 신라에서는 성공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최치원의 아버지는...

똑똑했던 아들 최치원이 12살이 되던 해 당나라로 유학을 보내버립니다.

최 치원의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라로 보내면서 10년 안에 당나라 빈공과에 합격해야 한다고
누누이 당부를 했다고 해요.

뮤지털 최지원 포스터


12살이면 지금의 초등학교 5학년인데.. 어린 아들을 유학을 보내면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돌아오지도 못하게 했다는 건 너무 심했던 것 같긴 하네요..

당나라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치르던 과거시험이 바로 빈공과인데.. 최치원은 아버지가
말한 10년이 아닌 6년 만에 장원으로 급제를 해버립니다.



그리하여 18세부터 당나라에서 관직생활을 시작한 최치원은 관리로서의 명성도 명성이지만
대단한 문장가로도 이름을 날라게 되는데요..

당시 '황소'라는 사람이 난을 일으킨 '황소의 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에서 최치원이
'황소를 토벌하자라는 내용으로 쓴 '토황소격문'은 그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 줍니다.

토황소격문
토황소격문 최치원. 안동MBC 다큐맨터리 화면 캡쳐"


안동 MBC 다큐멘터리에서는 이 토황소격문을 최초의 한류라고도 했네요..^^.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



최치원은 28살이 되던 해 당나라에서 관직 생황을 정리하고 신라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당시 신라는 헌강왕이 통치하고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에게 왕은 '시독겸한림학사' 라는 벼슬을 내려 등용했는데요..
헌강왕은 30도 되지 않은 젊은 학자에게 지금의 국방차관에 맞먹는 역할도 부여합니다

한림학가
'KBS 지식' 화면 캡쳐


6두품 출신의 학자에게 높은 관직을 내린 것은 진골들의 특권을 막기 위한 포석이었는데요
헌강왕이 죽자 안타깝게도 이러한 개혁의 의지도 꺾이게 됩니다

자신을 후원해주던 헌강왕 사후 최치원은 한직으로 물러나야만 했는데요.. 중앙에서
밀려나 떠돌던 최치원은 지금의 경남 함양지역의 태수로 부임하게 됩니다.

상림공원상림공원
'KBS 지식' 화면 캡쳐  경남 함양 상림공원


하천의 범람이 잦았던 함양지역에서 이전의 태수들은 제방을 쌓는데만 몰두했지만 최치원은
지리산의 나무를 옮겨 심어 빈번한 홍수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천백년이 지난 지금도 최치원이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산림은 함양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으니 바로 상림공원 (상림숲)입니다.


시무 10조


최지원이 진골귀족의 견제에 밀래 지방 한직에서 있었던 시기 신라의 왕은 정강왕에서
진성여왕으로 바뀌었지만..

귀족세력들은 여전히 향락에 빠져 있었고.. 백성들은 민심은 크게 동요하기 시작하면서
신라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최치원은 진성여왕에게 한 장의 상소를 올렸는데요.
이 상소는 그의 집을 '상소장'이라고 부를 만큼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상소장
상소장


'왕이 우선 시급하게 해결애야 할 열 가지 과제'에 대한 상소가 바로 '시무 10조'인데요
최치원은 이 상소를 진성여왕에게 올림으로서 마침내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습니다

'시무 10조'의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왕권을 강화하되 골품제가
아닌 능력위주의 인재 등용을 건의하는 내용으로 추정된다고 해요..

.

하지만 천년을 내려온 신라의 근간인 폐쇄적인 신분구조를 6두품 출신의 최치원의
개혁안 하나만으로 바뀔 수는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혁을 보지 못한 최치원은 관직을 버리고 전국을 떠돌다 가야산에서 은둔해 지내다
마지막에는 형인 현준이 승려로 있던 해인사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가야산
가야산 절경



최치원이 꿈꾼 개혁은 최치원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신라 전체의 실패로도 보이는데요
쇄신의 기회를 놓친 신라는 점점 폐망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였습니다.

신라는 골품제 때문에 수많은 유능한 인재들은 신라를 떠나 당나라로 향하게 되는데요..

당나라에서 유학 후 빈공과에 합격한 최언위는 나중에 고려 왕건의 책사가 되고요
다른 빈공과 합격자 최승우는 견훤의 책사가 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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