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한국사 아는척하기 ( 이땅의 사람들)

해동성국 발해!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

기차타고시베리아 2022. 11. 16. 20:44
반응형

발해 무왕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진이라는 나라를 건국하였고 713년 당나라도 이를 인정하고
대조영에게 '발해군왕'이라는 칭호를 주었는데요.. 이때부터 발해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당나라 입장에서도 발해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요.. 이유는 바로
요서지방의 돌궐이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도
발해와 국제정세 (이미지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한 돌궐에게 대조영은 손을 내밀었고 당나라는 돌궐과 발해가 힘을
합치는 꼴은 볼 수가 없으니 발해와 더 이상 각을 세우려 하지 않은 것이지요..

대조영이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 대무예가 두 번째 왕이 되었으니 바로 무왕입니다.



무왕은 당연히 무력을 주변을 정복하고 영토를 드넓힌 왕이 되시겠는데요.. 무왕은 왕이
되자 발해 북쪽의 흑수말갈을 공격하여 북쪽의 안정을 꾀하려 했습니다.

발해가 강력해 지자 흑수말갈은 당나라와 손을 잡으로 하였고.. 이를 견제하고자 무왕은
동생 '대문예'에게 흑수 말갈을 공격하라 명령하는데요..

대문예
무왕과 동생 대문예(이미지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대문예'는 흑수말갈을 공격하면 당나라가 처들어 올것을 염려해 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무왕은 공격을 명령하였지만 대문예는 군대를 이끌고 당나라로 도망가 버립니다.

화가 난 무왕은 당나라에 당장 '대문예'를 내놓으라고 하지만 당나라는 돌려보내지 않는데요
어차피 당나라와 한판 대결을 기다렸던 무왕은 선제공격을 해버립니다.

732년 발해 장군 장문휴가 수군을 이끌고 당나라 산동지방을 공격해 승리를 거둔 것 이었는데요..

공격발해
이미지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선제공격으로 당나라의 수군울 무력화시켜놔야 향후 당나라의 반격을 봉쇄하기
쉽다고 판단한 무왕은 산둥지방 등주의 당나라 수군을 공격한 것이었습니다.

다급해진 당나라는 신라에게 발해들 공격해 줄것을 요청하였지만 신라는 행군 도중
눈이 너무 많이 와 이등을 못한다는 이유로 공격하는 척만 해버립니다.

당나라로부터 도망처 나와 나라를 세운 발해가 당나라를 혼쭐 내준 것이었는데요..
무왕의 공격으로 자신감을 찾은 무왕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크게 넓히게 됩니다.

발해 문왕


무왕의 뒤를 이은 문왕은 당연히 학문과 문물, 제도를 발전시킨 왕입니다.

문왕은 이제 당나라와의 싸움을 멈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당나라와 화친을 도모
하는데요.. 당나라의 유학과 불교를 받아들이고 앞선 제도를 받아들입니다.

문왕은 나라의 위세에 걸맞게 더 큰 곳으로 수도를 옮는데요.. 새로운 수도는 당나라
장안을 본떠 계획도시로 만든 상경 용천부입니다.

지도
발해의 무역로 ( 이미지출처 TIN뉴스)

수도를 옮긴 문왕은 수도에서부터 전국 각지 나아가 다른나라까지 뻗어나가는
길을 잘 정비하도록 하는데요.. 이 길을 따라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유명한 거란도 라는 것도 바로 발해 용천부에서 거란으로 이어지는 길이라는 뜻이에요..


해동성국 발해



문왕이 세상을 떠나고 발해는 잠시 혼란에 빠지지만 818년 10대 왕으로 오른
선왕때 이러러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선왕이 왕위에 오르고 동쪽으로는 연해주 서쪽으로는 요동까지 깊숙이 뻗어나갔고
남쪽으로는 대동강 북쪽으로는 흑룡강에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게 됩니다.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리기 위해 선왕은 전국을 5경 16부 62주로 나누었고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학을 보내기도 하는데요..

해동성국
해동성국(이미지 출처 KBS 역사저널 그날)

당나라에서 외국인들을 상대로 치는 과거시험인 빈공과에서 발해인이 장원으로
합격하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신라인들이 독차지하고 있었다고 해요..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학문적으로 수준이 높아진 발해는 이렇게 강력한
나라로 자리 잡게 되었고

'바다 동쪽의 번성한 나라~'라는 뜻으로 해동성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