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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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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관동군, 만주국, 몽골 그리고 소련. (노몬한 전투) 만주국과 몽골 1932년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우자 소련은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만약 일본이 독일과 손잡고 양면에서 공격해 들어온다면 소련은 이를 어떻게 막내야 할까.?' 이러한 고민 끝에 눈에 들어온 것이 것이 바로 근대국가로 재탄생한 몽골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반혁명 분자였던 '운게른 남작'이 혁명 세력에 패퇴한 뒤 몽골로 피신했고 몽골은 운게른 남작의 도움으로 독립을 선포하면서 300년 동안 이어져온 청나라의 지배에서 벗어 나게 되었는데요..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가 절묘하게 애매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만주국이란 괴뢰국을 만들었고 그 여세를 몰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중국과의 전쟁이 정리되면 병력을 모아 러시아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일본 관동군이 세운 만주국은 .. 2021. 9. 16.
국제연맹에서 삼국동맹으로.. 독일과 친해진 일본 국제 미아가 된 일본 중국이 장기전으로 태세를 전환하는 것을 본 일본은 '거국일치'라고 말하며 전시체제로 국가체계를 개편을 했습니다. 워싱턴 해군 조약 탈퇴, 국제연맹 탈퇴로 국제사회에서 멀어진 일본은 이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는데요.. 아무래도 정치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동아공영권 이였어요..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1938년 '고노에 후미나로' 수상은 동아협동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동아영원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신질서의 건설이 이번 전쟁의 목적이다. 일선은 일본의 촉구 정신에 연원 하며 이를 완성하는 것은 일본 국민에게 지워진 영광스러운 책무이다" 간단히 말해 동아시아 지역적 운명공.. 2021. 9. 7.
난징대학살 원인, 진행과정. 반성없는 뻔뻔한 일본 (혐사진 없음) 난징대학살의 원인 상하이 전투에서 10만의 병사를 잃고 어렵게 승리를 거둔 일본은 1937년 12월 13일 수도 난징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악몽같은 전투를 치르고 난징에 입성한 일본군은 사람이 아닌 악귀였습니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하였고 이로 인해 30만여 명의 중국인이 무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난징 대도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난징사건'이라고 부기도 하고 서구에서는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라고도 합니다. 이유는 앞서 얘기한 대로 상하이 전투에서 중국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친 일본군은 중국의 독일식 사단의 참호 앞에서도 닥치고 돌격을 외치며 공격하다가 심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중국.. 2021. 9. 2.
중일전쟁 상하이전투, 우쑹전투 ! 중국의 각성과 바보짓.. 태평양전쟁의 시작 중일전쟁 일본에 있어서 태평양 전쟁의 시작은 1937년 입니다. 흔히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1941년 12월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일본군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바로 중국이었지요.. 이때부터 일본은 계속 전쟁이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일본군 사망자 100만 명 중 절반이 중국 땅에서 죽었고 1943년 중반까지 일본군 예산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 투입되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일본국의 주 전선은 중국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왜 일본은 이러한 무모한 전쟁을 시작한 것일까요? 애초에 일본군은 중일전쟁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었던 것이었어요. 3개월 안에 중국을 점령하겠다는 호언장담이 결국 일본군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1937년 중국의 장제스는 장시성 루산에서 루.. 2021.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