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맨해튼 프로젝트, 원자폭탄의 탄생

기차타고시베리아 2022. 1. 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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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프로젝트의 시작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했습니다. 곧바로 부통령이던 트루먼은
대통령직을 승계하고 첫 각료회의를 마쳤는데요.. 헨리 스팀슨 육군 장관은 모든
각료가 나간 뒤 트루면에게 독대를 청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보고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원자폭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사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일본보다는 독일 때문에 시작되었는데요,,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는 히틀러의 손에 핵무기라는 전대미문의 강력한 무기가 들어갈수 있다는 소식이
연합국들에 퍼지기 시작했기 때문였습니다.

1938년 후반 독일이 우라늄 원자핵 분열 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퍼졌는데요,,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과학자들은 당시 가장 위대한 물리학 자라로 불려진
아인슈타인에게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에게 편지를 좀 써달라고 설득했습니다.


이리하여 아인슈타인의 이름으로 루스벨트에게 전달된 편지에는 새로운 무기의
무서움과 위험성이 가득 들어있었고 이를 받은 루스벨트는 고민 끝에 노벨상 수상자들을
포함한 수많은 과학자들을 불러 모아 핵폭탄 개발 프로젝트에 들어갔던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목표는 무조건 나치 독일보다 빠르게 핵폭탄을 개발하는 것이었고..
어느 누구에게도 이 기밀이 새어 나가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로젝트에 대한 오싹한 보고


1942년 8월 시작된 맨해튼 프로젝트! 수천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기밀유지를 위해 극소수의 인원만이 프로젝트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는데요..

과학자와 기술자 대부분은 자신이 하는 작업의 실질적 목적을 모른 채 할당된 과업만을
수행했고 정치인과 전쟁지도자 중에서 원자폭탄 프로젝트를 알고 있던 이는 루스벨트와
스팀슨뿐이었습니다.

1945년 4월 25일 스팀슨은 트루먼에게 원자폭탄에 대한 정식 보고서를 제출했는데요..
내용을 보면 쓴 사람이나 읽은 사람이나 등골이 오싹해질 만한 내용이었습니다.

간단히 보면 이런 내용입니다.

1. 4개월 정도 후에 미국은 전대미문의 파괴적인 병기를 완성할 것이다
2. 미국은 이 병기를 위해 영국과 긴밀히 협조했지만 모든 자료는 미국이 관리하고 있다.
3. 미국이 영구적으로 이 기술을 독점할 수는 없을 것이고 다른 나라도 따라서 만들 수 있다.
4. 이 병기가 어디선가 비밀리에 만들어질 수 있고 약소국이 강대국을 점령할 수도 있다.
5. 이 병기에 의해 세계는 멸망의 위기게 직면할 수 있으며 문명이 완전히 파괴될 수 있다.
6. 이 병기를 관리하려면 이전과는 다른 철저한 감시와 통제 체제가 필요하다
7. 미국이 이 병기를 개발했다는 것은 인류의 비극적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었다.
8. 원자력의 정상적 사용 방법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세계 평화와 우리 문명을
우리 미국이 원하는 대로 보존할 기회를 얻게 된다.
9. 미국 정부는 이를 위해 입법 행정 부분에서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트루먼의 고민



칼자루는 트루먼에게 넘어갔습니다. 트루면은 당장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인가 말 것인가?' ,
'사용한다면 어느 나라에 떨어뜨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 상황에서 과연 원자폭탄이라는 전대미문의 전율적인 무기를
사용할 만큼의 전황이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와중에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벙커에서 자살하고 며칠 뒤인 5월 7일 독일이
공식적으로 항복했습니다.

독일항복

이제 원자폭탄을 사용한다면 일본에게 사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1945년 5월 25일 오키나와 전투가 한창이던 때 트루먼은 일본 본토 진공작전인
'올림픽 작전'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데요.. 문제는 이 작전에 예상되는 인명피해의
규모였습니다.

오키나와 전투에 투입된 병력의 35% 가 피해를 입은 사실을 고려할 때 본토 공격에
76만 명을 투입하면 26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가 예상된다는 보고였습니다.

하지만 육군장관 스팀슨은 이 보고를 무시했습니다. 스팀슨의 의견은 이랬습니다.

"일본군이 끝까지 저항한다면 미군의 사상자 수는 100만 명이 넘을 수도 있다"

비관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어쩌면 현실적인 예측이었습니다.
상황이 비관적으로 흐르자 미국 내에서도 전략의 방향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는데요.. 이중 맨해튼 프로젝트도 카드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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