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 이야기 111

필리핀 탈환전. 맥아더의 복수 (레이테만 상륙작전)

필리핀을 망치기 시작한 일본 일본은 남방 작전을 계획했을 때부터 세 가지 방침을 정했는데요.. 첫 번째는 남방작전의 기본목표인 자원 확보로 최대한 자원을 확보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점령지 군대는 일본 본국의 보급에 의존하지 말고 식량과 물자를 현지에서 조달하라는 것이었으며 세 번째는 치안확보라는 이름으로 저항하는 현지 주민들은 억압하고 강격 대응을 해도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필리핀을 점령하자마자 일본은 필리핀이 쓰던 화폐를 폐지하고 군표를 찍어서 뿌려댔는데요.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일본이 필리핀에 들어온 지 3년이 안돼서 필리핀의 물가가 100배까지 뛰어오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이 불과했는데요, 일본군은 필리핀의 경제 기반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본국에서 보급을 받지 못하는 필리핀 주..

무사도와 전진훈이 만든 바탄 죽음의 행진

바탄 죽음의 행군의 이유 맥아더가 호주로 도망간 이후 바탄반도에 남겨진 미군은 결국 일본군에 항복을 하게 되는데요.. 포로가 되는것을 명예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일본군은 미군 포로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120km 떨어진 오도넬 수용소까지 물과 식량도 제대로 주지 않으며 행군 하도로 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승리했지만 보급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포로들의 규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는데요 일본군 참모가 포로를 엄중히 감시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조작해 포로를 학살하라는 명령을 내려 일본군은 실탄과 운송수단이 필요없는 죽음의 행진을 계획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본의 이런 만행이 가능했던 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무사도나 진진훈 같은 개념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는게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입니다. 무사..

필리핀에서 도망친 맥아더 장군. (바탄전투)

독선의 맥아더. 태평양전쟁 직전 맥아더는 신생 필리핀군의 군사고문이자 필리핀 육군 원수이기도 했습니다. 맥아더는 여러모로 필리핀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었는데요 그의 아버지는 필리핀 군사령관 이었고 맥아더 자신도 필리핀에서 두 차례나 근무를 하기도 했습니다. 맥아더는 제1차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이었는데요. 30세의 젊은 나이에 사단장을 맡기도 했었고 미군 사단장가운데 가장 많은 열다섯 개의 훈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공황시기 퇴역 군인들이 1945년 지급하기로 한 보너스를 조기 지급해 달라고 평화적인 시위를 한적이 있었는데.. 이 시위대를 탱크를 동원해 밀어 버릴 만큼 아주 독선적인 사람이었다고 해요. 맥아더는 이 시위대는 공산혁명을 일으키려는 '빨갱이'라고 주장을 했는데요 사실 이 사람들은 그저 배고 ..

진주만 공격이 욕을 먹는 이유.(대환장 선전포고문)

미국의 최후통첩, 헐 노트 ( Hull Note) 1941년 11월 26일 미국은 일본에게 최후통첩을 날리는데요 바로 당시 미국의 국부 장관 코델 헐 (Cordell Hull) 이 주미 일본대사 노무라 구루스에게 전달했던 헐 노트입니다. 일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은 조건이었고 미국 정부도 일본이 헐 노트의 내용을 받아들일 것 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왜 이런 조건을 던진 것이었을까요? 이유는 미국은 일본의 외교 암호를 이미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주미 일본대사는 본국으로부터 두 가지 카드를 전달받았는데요.. 첫 번째는 '일본군을 제한적으로 철수하고 중일전쟁을 종료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일본에 석유 수출만 재개한다면 동남아시아와 중국에서 군대를 ..

왜 '진주만' 이어야만 했을까 ?

진주만 이어야 했던 이유 미국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어느정도 예측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필리핀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했고 일부는 미드웨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지 진주만을 노릴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고 해요. 일단 일본에서 진주만까지는 3000 해리가 넘었기 때문에 미군의 감시를 뚫고 3000 해리를 넘어온다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일단 뚫고 넘어와도 진주만에 있는 미군을 상대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진주만에 주둔해 있던 미군 지상군 병력만 5만 9000명 수준이었고 하와이에 배속된 전투함만 보더라도 전함 9척, 항공모함 3척,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18척, 구축함 54척, 그리고 잠수함만 22척이나 되었거든요.. 여기에 해군의 항공기 수만 4..

장진호 전투와 하와이 국군전사자 유해 송환.

하와이 국군 전자사 유해 송환 얼마 전 하와이에서 국군 전사자 고 김성주, 정환조 일병 두 분께서 고국으로 돌아오셨는데요.. 유해봉환 행사를 보는 동안 참 뭉클하면서도 어떻게 하와이까지 가시게 되었을까 궁금했었습니다 그리고 두 분이 하와이에 가시게 된 이유를 들었을 땐. 정말 영화의 한 장면 같더라고요..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과 미군은 재열을 정비하고 반격을 준비했는데요.. 이때 영남 지방에 살던 두 청년이 미군의 편제에 편입되어 일본에서 훈련을 받고 카투사의 일원으로 미군과 함께 전쟁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이 두명의 한국 청년은 인천 상륙작전에 참여하고 미군과 함께 그대로 북으로 북으로 전진했고.. 개마고원 장진호까지 가게 된 것이었다고 해요.. 공군이 없는 중국군은 한국전쟁에 참..

역사 이야기 2021.10.02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 (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 )

'동양의 신비' 제로센 "태평양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성공과 실패를 함께한 일본 최고의 전투기" "1만 939 대를 생산하면서 일본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된 전투기" "일본 스스로 "동양의 신비"라고 치켜세우며 자랑하는 전투기 " " 현재까지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전투기" 바로 제로센입니다. 태평양전쟁은 이 제로센 전투기의 화려한 등장과 몰락으로 볼 수 있는데요.. 제로센은 제국주의 일본의 영광과 몰락을 보여주는 표식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항공기는 한 나라의 기초과학, 공학, 공업 기술, 산업 역량을 모두 투입해야만 만들 수 있는 기술의 집약체인데요.. 그래서 항공산업은 그 나라의 공업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여겨진다고 해요 그중에서도 전투기 개발이라고 하는 것은 한 나라의 모든 과..

초록요정 압생트 ! 에메랄드 지옥과 '빈센트 반 고흐'

초록요정 (Green Fairy) 압생트 (Absente)! '초록요정' 혹은 '녹색의 악마'라고 불리는 무시무시한 술이 있었으니 바로 압생트입니다. 압생트는 스위스에서 유래된 증류주인데요.. 허브와 향쑥(이라가 아는 그 쑥 맞습니다)의 혼합물을 다시 증류한 술입니다. 압생트의 색은 엽록소 때문에 녹생을 띠는데 빛을 받으면 점점 산화되어 갈색으로 변한다고 해요 압생트는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아 보통 물과 1:1로 희석해서 마시는데요.. 압생트 전용으로 만들어진 구명이 뚫린 스푼에 각설탕을 불에 녹여 마신다고 합니다. 한때 압생트는 신경에 영향을 주어 환각을 보게 하고 장기 복용하면 시신경을 파괴한다고 해서 금지된 적도 있고 아직까지 국내에선 정식 수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실제로 압생트가 환..

역사 이야기 2021.09.29

스탈린의 외교감각과 일본이라는 카드

노몬한 전투 후 소련과 일본의 입장 노몬한 전투이후 일본은 심각하게 소련의 위협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군부의 남방공력파와 북방공략파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었지요.. 일본 군부에서 이제 소련과 싸우겠다는 말은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앞으로 일본이 싸워야 하는 쪽은 북쪽이 아니라 남쪽이라는 것을 한방 세게 얻어 맞고 확실하게 알아버린 것이었어요 일본이 소련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확률은 0%에 가까웠습니다. 거기다 1939년 동맹인 독일이 독소불가침조약을 체결하고 소련과 사이좋게 폴란드를 나눠 먹어 버렸으니 일본은 이제 동맹에 기댈 수도 없었습니다. 남은 방법은 어떻게든 소련에 들러붙어 구애해서 불가침 조약을 맺는 것뿐이었어요... 일본은 몸이 달아있는 상태였는데요..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함에 따라 무주..

일본관동군, 만주국, 몽골 그리고 소련. (노몬한 전투)

만주국과 몽골 1932년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우자 소련은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만약 일본이 독일과 손잡고 양면에서 공격해 들어온다면 소련은 이를 어떻게 막내야 할까.?' 이러한 고민 끝에 눈에 들어온 것이 것이 바로 근대국가로 재탄생한 몽골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반혁명 분자였던 '운게른 남작'이 혁명 세력에 패퇴한 뒤 몽골로 피신했고 몽골은 운게른 남작의 도움으로 독립을 선포하면서 300년 동안 이어져온 청나라의 지배에서 벗어 나게 되었는데요..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가 절묘하게 애매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만주국이란 괴뢰국을 만들었고 그 여세를 몰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중국과의 전쟁이 정리되면 병력을 모아 러시아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일본 관동군이 세운 만주국은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