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203고지 전투, 일드 '언덕위의 구름' 과 희대의 삽질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7. 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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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구름'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있습니다.
러일전쟁 당시 연합함대 참모를 했던
아키야마 마사유키와 그의 형이 근대화가
요동치던 일본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드라마 인데요..

일본의 침략을 미화한 정말 개념 없는
이 드라마에도 당시 뤼순 공방전이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고 해요.
(특히 203 고지 전투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네요)

일본 해군은 갖은 수를 다 썼지만 러시아의
극동함대를 분쇄하지 못하였습니다.
문제는 요새화 되어있는 뤼순항의 해안포였어요..
러시아는 뤼순항 안에서.. 일본은 밖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급한 건 일본이었지요.. 러시아는
극동함대와발트함대라는 뛰어난 해군력을 갖춘
대국이었으니 이 두함대가 서로 힘을 합친다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일본은 어떻게 해서는 두 함대를 각개 격파해야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뤼순에 있는 극동함대를
분쇄해야 했고 결국 일본을 육군을 투입해
뤼순을 점령하려고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노기 마레스케

문제는 뤼순 공략을 위해 편성된 육군 3군
사령부의 인선이었는데요..
노기 마레스케 대장과 이지치 코스케 소장 등
조슈번 출신의 장군들은 근대전을 지휘하기는
무리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본 육군은 청일전쟁 때 뤼순을 쉽게 함락한 적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문제는 이번에 상대해야 할
적은 바로 러시아였던 것이었습니다.

러시아는 뤼순항 을 콘크리트 방벽과
맥심 기관총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어
놓았으니 일본 육군의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언덕 위의 구름'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연합함대 참모 아키야마 사네유키 소장은
뤼순 요새를 관찰하다 203 고지를 발견했습니다.

203고지 ( 위키백과 )

다른 고지들은 포대과 벙커로 도배되어 있는데
유독 203 고지만 민둥산이었던 것이었는데요
이에 해군은 육군에게..
"203 고지만 점령하면 된다 무리하게 다른 고지를
공략해 피해을 가중할 이유가 없다 "라고
이 사실을 통보합니다.

하지만 육군의 이지치 소장은 단번에 이를
거절합니다. 육군은 육군만의 작전이 있으니
해군이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드라마 '언덕위의 구름' 중 

그리고 일본 육군은 203 고지가 아닌 다른 산들을
향해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고 판판히
박살이 나면서 삽질을 하기 시작합니다.

1904 년 8월 1차 공세에서 일본 육군은 러시아의
벙커에서 순식간에 불을 뿜는 중포에 의해
개죽음을 당하게 되고 장교들은 이를 눈앞에서
묵도하게 됩니다.

영화 '203 고지' 중

그럼 일본 육군의 작전이 바뀌었을까요..?
그러면 일본이 아니죠.. 일본 육군은 대대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반자이~'를 외치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같은 코스로 러시아 벙커를
향해 돌진하는 상식 밖의 공격을 계속하게 됩니다.

매달 26일 되면 공격을 감행했고 러시아 군도
이를 잘 알고 있었는데요.. 왜 자꾸 26일에
공격을 하냐고 묻자 이에 대해서 이지치 소장은
희대의 명답을 남깁니다.

" 단약이 그때쯤 준비가 되고.. 26일이 난산을
돌파한 운이 좋은 날이고.. 짝수날이기 때문에
둘로 나누기가 좋다 "

같인 날 같은 곳으로 만 돌격해 오는 일본군이
러시아는 그냥 고마울 따름이었겠지요..

영화 '203 고지' 중

피해가 계속되자 보병사단의 한 참모가
203 고지로 소규모 별동대를 보내자는 의견을
내었고 한 번의 공격이 있었지만 이는 러시아가
203 고지의 취약점을 확인하게만 만들어 주었고
러시아는 203 고지를 보강하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새로운 시체가 쌓여갔고 제3군이 사상자는
3만 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 육군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요..

영화 '203 고지' 중

1904년 11월 일본의 3군은 3차 공격을 준비하면서
흰 어깨띠를 두른 이른바 '백거대'를 준비시킵니다.

드라마 '언덕위의 구름' 중 

총 6개 대대 3100여 명의 특공대를 조직해서
밤에 몰래 침투를 시켰지만 산 중턱까지 간
백거대는 러시아 군의 탐조등 아래서
총알받이가 되는 신세가 되었고 연락수단이 없어
퇴각 명령도 듣지 못한 이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러시아 군의 표적지 역할을 하면서 괴멸이 되었다고 해요

결국 중국 선양 지역에서 러시아 군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발트함대가
하루하루 뤼순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본 일본은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요..

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총 사령관이
더 이상 노기 장군의 실책을 봐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참모장인 고다마를 뤼순으로
보냈습니다.

고다마는 노기 장군을 만났고
언덕 위의 구름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자네 지휘권을 며칠만 빌려줄 수 있겠나?"

고다마는 모든 화력을 203 고지에 쏟아부었고
지휘권을 인수한 4일 만에 203 고지를
점령하였습니다.

280 미리 유탄포

203 고지는 뤼순항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요지였고 이후 고지에 오른 일본군이 찍어준
좌표로 극동함대 위로 일본군의 유탄포가
덮치기 시작하면서 155 일을 끈 뤼순 공방전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의 공공의 적이 되었던 노기 장군은
할복을 결심하지만 천황의 만류에
당시에 죽지 못하였고.. 메이지 일왕 죽은 후에
아내와 함께 자살하였다고 합니다.

뤼순 공방전을 치르며 일본은 전쟁에서 군수물자의
소모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전장에서 자신들이 소모하는 물자가
자신들의 생산능력으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고
그때부터 일본군은 고유한 용병 사상을 정립
했는데요..

"물건은 아끼고 사람의 생명은 그다음이다"

여러모로 러일전쟁은 이본에게 지옥을
만들어준 전쟁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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