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필요한 세가지를 들자면..
돈과 많은 돈과 더 많은 돈! ' 이라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만큼 전쟁에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말 이겠지요..
러일전쟁 시작후 일본은 전쟁비용 마련에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채권을 팔아 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러시아의 승리를 점치고 있었던 열강들은
일본의 채권을 사려고 하지 않았지요..
러일전쟁 초기 일본은 전체 예산의 40%나되는
채권을 발행하여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누구도 일본의 채권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자율을 아무리 높게 쳐주어도 마친가 지였어요
이때 일본을 구한 것은 바로 유대인 금융자본가인
제이콥 핸리 시프 였습니다.
시프는 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에 투자하면서
미국 금융계의 큰손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가 사장으로 있던 '쿤러브 투자은행'은 나중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를 인수하고
유명한 '리먼브라더스'의 지주회사가 되기도 합니다.
시프는 유대 민족주의에 심취한 인물로
유대민족을 박해하던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이때 러시아가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국채를 팔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일본 은행총재는
시프를 만나게 되었고 시프는 그 자리에서
미 판매된 일본 국채 전량을 구매하였습니다.
시프는 한발 더 나아가 유대 자본의 대표인
로스차일드 가문에 편지를 보내 러시아 채권
인수를 거절해 달라고 부탁했고 러시아 국채가
금융 시장에 풀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일보에게는 천운이었고 전쟁비용의 40%를
시프와 시프의 주선으로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시프가 없었다면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뤼순에서의 승리는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 주게 되는데요..
시프 이외에게도 일본의 국채가 팔려나가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즈음 1905년 1월 러시아에서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일요일라고 하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당시 러시아는 산업화로 인해서 농민과 노등자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정부는 러일전쟁의 승리로 사회불안을 외부로
돌리려 하고 있었는데요...
그래도 러시아 국민들은 황제를 신의 대리자로
믿고 따르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노동자들의 상황을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차르에게 편지를 보내며 탄원했던
'게르오기 가폰 신부'는 1905년 1월 22일 일요일
"차르(황제)는 우리를 외면하지 않을 것" 이라며
청원서를 작성해 황제가 있는 겨울궁전으로
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위대는 '병사여 인민을 쏘지 말라'라는
피켓을 들고 평화적으로 행진을 벌였는데요
하지만 순식간에 같이 행진을 하는 사람들은
30만으로 불어났고 성가를 부르며 광장에 모여들었습니다.
이에 위압을 느낀 황제의 군대는 일제히
사격을 하고 포격을 가해 1000 명이 넘는
노동자가 죽에 되었습니다.
바로 러시아를 사회주의로 몰아가게 되는
'피의 일요일 사건' 이었습니다.
삽시간에 이 소식은 러시아 전역으로 퍼지게
되었고 모스크바, 사라토프, 바르샤바 등지에서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러시아의 미래가 내부에서도 흔들리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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