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된 중국의 문물
백제의 근초고왕은 우리나라 삼국시대를 이야기 할 때 매우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근초고왕은 영토를 넓히고 왕의 힘을 강하게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물을 받아들인 왕이기 때문인데요..
사실 이시절 다른 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앞선 중국의 문물과 물자를 받아
드리는 것을 의미했다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앞선 기술과 문화는 나라를 발전시키는데 꼭 필요한 것들 이기도 하였지만 중국의
비단이나 도자기, 각종 청동기 철기 제춤들과 유리공 제품 들은 왕과 귀족들이 권세를
과시할 수 있는 사치품이었기도 했습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뿐만 아니라 왜 나라 일본까지도 다 마찬가지였지요...
백제가 지금의 중국 청도 지역인 요서지역을 지배했다는 학설도 있는데요 바로
백제의 요서경락설입니다.
이것이 허무맹랑한 학설도 아닌 것이 중국 남북조시대의 문헌을 찾아보면 이와 관련된
내용들을 찾을 수 있다고 해요..
다만 백제가 요서지역을 직접 다스렸다기보다는 최소한 교역을 상업 기지를 건설
했을 수 있고 이 와중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군사적으로 진출을 했을 수도 있다고
보는 것이 지금의 정설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백제는 이렇게 서해바다를 건너 중국과 직접 교역을 하며 중국의 신문물을
받아 들일수 있었는데요.. 당시 미개했던 섬나라 일본은 상황이 달랐습니다.
미개한 왜 나라 일본
일본에서 도시국가은 2~3세기경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앙집권 국가로
발전했을 시기에야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 열도에는 30개의 도시국가가 있었고 인구는 35만 정도였다고 해요.. 그때
한반도에 살고 있었던 인구가 약 250만 정도 있으니 일단 인구 차이가 10배가 났네요..
중국의 후한서 동이열전과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나와있다는 왜 나라에 대한 기록은 참
재미있는데요...
일본에 대한 묘사를 한번 보시죠
-. 왜 나라 남자들은 모두 얼굴과 몸에 문신을 했는데 물고기를 놀라게 하기 위해서였다
남자들은 상투를 틀었지만 모자는 쓰지 않았고 여자는 그냥 풀어헤치고 다녔다
-. 사람들은 바느질을 할 줄 몰라 옷은 천 조가리를 걸치고 끈으로 묶고 다녔고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도 다녔다.
-. 식사할 때는 손으로 음식을 먹었고 벼농사를 했으며 양점을 해 천을 직조하였다.
혼자 맨발로 온 왜 나라 사신 모습이 재미있는데요.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는 이렇게 멀리 있는
미개한 나라에서 조차 자기들을 알고 찾아왔다고 홍보용으로 왜 나라를 이용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위나라로부터 중국 문물을 받을 수 있었던 왜는 위나라가 망하고 새롭게 진나라가
등장하자 중국과의 관계가 틀어졌고. 다른 루트를 찾고자 신라를 찾아가는데요..
신라는 당시 동해안 루트를 통해 고구려로부터 중국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자기들 갖기도 부족한 중국 물건을 왜에게 까지 나눠줄 수 없으니 이를 거절합니다.
이제 왜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신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약탈해 가는 것 밖에 없어지요..
하지만 이때 왜국의 지도부에 눈이 번쩍 뜰일 만한 정보가 들어오는데.. 바로 가야에게 들으니
가야 옆으로 백제라는 나라가 있는데 옷갓 보물과 비단이 넘처나는 초초 부자 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백제는 근초고왕이 다스리고 있던 강력한 국가였기 때문에 왜 나라는 함부로 약탈을
하러 가지 못했고 사신을 위례성으로 보냈습니다.
위례성과 백제의 보물들을 구경한 왜 나라 사신은 백제 근초고왕에게 자신들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며 구걸을 했는데요..
근초고왕은 백제가 선진 문물을 전달해 주면 왜 나라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물었고
왜 나라는 몸으로 떼우기로 합니다.
왜나라는 신문물을 전달해 주면 백제가 필요할 때마다 군사력을 제공하겠다는 딜을
넣었고 근초고왕은 이를 받아들이는데요..
실제로 근초고왕이 마한을 정복하러 갈 때 왜 나라에 군사를 요청하였고 왜나라 군사는
마한 전투에서 꽤 괜찮은 군사력을 보여줍니다.
흡족한 백제 근초고왕은 왜나라 군사들을 치하하고 일본왕에게 선물하나 주라고 하는데요
백제의 왕세자 이름으로 일본의 왕에게 칼을 하나 선사하니 그 유명한 칠지도입니다.
사실 역사 조작이 특기인 일본은 이 칠지도가 백제가 일본에 바친 조공품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었는데요 19세기 후반에 되어서 이 칠지도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글씨를 읽어보니 내용은 이랬습니다.
"서기 369년 백번 담금질한 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다.. 튼튼한 칼이니 후왕 ( 제후, 신하)에게
주기 참 괜찮다...
백제의 왕세자가 특별히 명령을 내려서 만들었 하사하니 왜왕은 대대손손 후에 전해라 "
지금까지 조공받은 거라고 자랑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반대로 하사 받은 물건이었던 거죠
사실 백제가 일본보다 늘 우위에 있었다고 보기도 힘들겠지만.. 중요한 것은 백제의
많은 문물이 일본에 전해졌고 일본은 이를 바탕으로 조금씩 성장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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