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성장
한강 남쪽 땅에서 작은 나라로 출발한 백제는 이후 주변의 다른 나라들을 정복해 가며 차츰
세력을 넓혔는데요..
하지만 백제가 어떤 과정을 거쳐 마한 일대를 정복하고 큰 나라로 성장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가 않았다고 해요..
고구려,신라에 대한 기록도 많지 않지만 아쉽게도 백제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는 게 더 별로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백제가 고구려,신라보다 더 먼저 전성기를 맞은 이유는 잘 알려져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한강 입니다.
한강은 지금의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일대 그리고 충청도를 이어주고 황해로 흘려
나가는데요....
이 한강은 농사를 위한 물을 제공해 준다는 것 이외에 사람과 물자를 이어주는 운송로로
아주 큰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처럼 도로가 잘 발달하지 못했던 예전에는 울퉁불퉁한 길을 걸어 다녀야 했고 말을
타고 다니기는 하지만 불편한 길을 불편하게 다니는 것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한강은 그 위에 배를 띄우기만 하면 원하는 곳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게 해 주었습니다.
또 한강은 바로 서해로 흘러들어 가기 때문에 특히 중국과 교류하는데 아주 유용했는데요..
한강에서 띄운 배가 바다로 나가 중국으로 빠르게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앞선 문물을 지닌
중국과 교류하기에 아주 유리했습니다.
한강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작고 약한 나라였던 백제는 빠르게 성장하였고. 8대 고이왕 때는
주변 나라들을 벌벌 떨게 할 정도로 강한 나라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8대 고이왕
사실 이 지역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던 연맹국가는 마한이었는데요.. 마한이라는
연맹국가에서 가장 강한나라는 목지국이었고 백제도 처음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목지국에 눈치를 보며 공물을 바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백제가 성장하고 목지국이 백제에 무릎을 꿇자 마한의 다른 작은 국가들도 백제에
항복했고 자신감을 얻은 고이왕은 남은 나라들을 복속시키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영토를
넓혀 갔던 것이었죠..
고이왕은 각 부족의 군사력을 중앙으로 집중시키고 부족장들에게는 벼슬을 내려 왕을
섬기는신하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때 신하들은 등급별로 입을 수 있는 옷 색깔을 다르게 정해줬다고 해요.. 등급이 확실하게
구분되다 보니 신하들은 왕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서 왕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를 공격한 13대 근초고왕.
사실 부여를 탈출한 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나중에 부여에서 나와 아버지 주몽을 만나 왕이 된
유리왕과 주몽의 다른 부인의 자식들로 유리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온 온조가 세운 나라가 백제이니
서로 어머니가 다른 형제들이 세운 나라이지만 4세기에 백제의 근초고왕 때에 이르러서 백제와
고구려는 불구대천 원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백제의 13대 왕인 근초고왕은 마한의 작은 나라를 차례로 정복하는 데 성공하고 강력한 나라를
만들었는데요.. 이후 근초고왕은 슬슬 북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백제가 아무리 세력을 키웠다고 해도 고구려는 백제가 쉽게 공격할 수 있을 만큼 약한
국가가 아녔는데요... 근초고왕은 고구려의 힘이 약해질 때까지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이 무렵 중국은 유비, 관우, 장비가 활약한 위나라, 촉나라, 오나라의 삼국지가 끝이 나고 중국이
남북으로 나뉘어 다시 여러 나라로 쪼개진 5호 16국 시대였는데요..
이중 전연이라는 나라가 고구려와 국경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북쪽 지역에는 호시탐탐 고구려를 노리던 전연은 결국 342년 고구려를 침공해
궁궐을 불태우고 백성 5만 명을 강제로 끌고 갔는데요.
이때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전연의 군사들은 고국원왕의 아버지인
미천왕의 무덤을 파 해쳐 그 시신을 꺼내갔고 어머니와 왕비는 인질로 잡아갔습니다.
아버지 미천왕의 시신은 다음 해에 돌려받았지만 어머니와 왕비는 무려 13년 동안 전연에
붙잡혀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백제의 근초고왕이었습니다.
근초고왕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고구려가 전연에 박살이 나있을 때 고구려를 치고
올라간 것이었지요..
이쯤 되면 백제와 고구려는 같은 민족이은 고사하고 조금이라도 약할 때 서로 죽이려고
달려드는 원수에 가까웠을 것 같아요..
백제의 근초고왕은 어수선한 고구려를 틈타 3만의 군사를 보내 평양성을 공격했는데요..
고구려의 고국원왕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투에 참여했다가 백제군의 화살에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고구려의 왕이 죽자 백제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근초고왕은 더욱 적극적으로 영토를
확장해 결국 백제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전연도 죽이고 싶도록 미웠겠지만..
자신보다 군사력이 한수 아래였다고 보고 있었던 백제가 자기들이 약해질 만큼 약해지고
깊은 슬픔에 잠겨있을 때 아픈 곳을 또 찌르며 공격해 들어왔으니 정말 백제가 훨씬 더
미웠을 것 같긴 한데요..
이후 이어지는 고구려 왕들인 소수림왕, 광개토대왕, 장수왕 은 이런 백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철천지 원수로 여겼을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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