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도끼
주먹도끼는 손에 쥐고 쓸 수 있는 도끼 형태의 뗀석기 인데요.. 전기 구석시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먹도끼라는 도구가 그냥 땅에 떨어져 있는 돌을 주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나름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고도의 도구이자 무기라는 점 입니다.
주먹도끼의 재료는 주로 규석, 석영, 사암 등을 사용하고 있으나 현무암 같은 종류의 다른 돌도
이용하였는데요..
이런 석재로부터 일차적으로 큰 박편을 떼어낸 다음 박편의 아랫부분과. 윗부분의
양면 주위를 돌아가면서 엇갈리게 타격해서 작은 박편을 떼어내는데요.. 이런 과정을 통해
처음부터 만들고자 하는 주먹도끼의 형태로 다듬어 나가면서 만드는 것이지요..
이렇게 만들어낸 주먹도끼로 짐승을 사냥하고 가죽을 벗기며 땅을 파서 풀이나 나무를
캐는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지금으로 보자면 맥가이버 칼로 불리는 멀티 툴
이였던 거죠.
특히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한쪽은 둥글게 반대쪽은 뾰족하게 날을 세운 좌우 대칭형의
획기적인 뗀석기였습니다.
주먹도끼를 사용했던 인류와, 사용하지 하지 않았던 인류는 지금으로 보자면 2G 핸드폰과
5G 핸드폰의 격차처럼 당시로서는 기술 발전의 격차를 가늠하는 유물이라고 보여졌습니다.
모비우스 라인
뗀석기 중 주먹도끼류,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아슐리안형 뗀석기는 북아프리카, 유럽, 중동
인도 등지에서 널리 발견되어 왔으나 오랫동안 히말라야 산맥 동쪽의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지리적인 이유로 문화가 갈린 것으로 여겨졌는데요, 미국의 고고학자 모비우스는
아슐리안형 뗀석기 문화와 그냥 찍개형 뗀석기 ( 그냥 뾰족한 돌멩이) 문화를 나누는 경계를
모비우스 라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슐리안형 석기가 발견되던 지역 대부분이 백인 거주지였기 때문에 백인의 문화가
이때부터 우월했다는 증거라고 모비우스에 의해 왜곡되어 악용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주먹도끼는 당시 세상에서는 최첨단을 달리는 무기이자 도구였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비우스 라인을 한방에 깨버리는 발굴이 1978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그렉 보웬'에 의해 바로 한반도에서 최초로 일어나게 됩니다.
1978년 연천 전곡리
1978면 4월 동두천 미군기지에 근무하던 주한미군 그렌 보웬은 당시 사귀고 있던
여자 친구와 함께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 변 유원지를 걷고 있다고 이상한 돌 하나를
발견합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그냥 평범한 돌이 그렉 보웬에게 발견된 것은 천운이라고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유는 그렉 보웬이 바로 고고학도 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주위를 더 뒤져 이 이상한 모양의 돌을 3~4 개 더 찾았는데요.. 찾은 돌들을 국내
고고학계의 최고 권위자였던 서울대 김원룡 교수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돌들은 구석시 시대 만능 도구인 주먹도끼로 밝혀졌고,.. 이는
그동안 정설로 알려져 있었던 모비우스 라인이 무너지는 순간이였습니댜,
보웬이 발견은 세계 고고학계의 학설을 완전의 뒤엎은 사건이었습니다,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는 석기 6000 점이 나왔는데요.. 이 발굴로 통해 연천 전곡리 유적은
세계적인 전기 구석시 문화 유적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연천 전곡리 발굴 이후 주먹도끼는 한반도 말고도 남중국 백색 유적에서도 상당히
많이 발견되기 시작했는데요 이후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주먹도끼와 같은
양면 가공 석기가 발견되며 모비우스 라인 가설의 반대 근거로 들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정확히 전곡리의 주먹도끼가 다른 지역처럼 30만 년 전 초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거리가 많다고 해요.. 석기의 연대를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고 실제로 구석기 인들인 호모 에렉투스 말고도 호모 사피엔스 들도
양먼을 깨서 쓴 석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반도의 구석기 유적
연천 전곡리 이외에 우리나라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지는 공주 석장리, 덕천 승리산 동굴
상원 검은모루 동굴 , 청원 두루봉 돌굴, 단양 수양개 등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지중 가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곳이 충북 단양의 금굴입니다
70만 년 전 유적이라고 해요..
그밖에 구석기 유적지로는 최초로 사람의 화석이 발견된 북한 덕천 승리산 동굴 있고,
공주 석장리에서는 12개 지층이 발견되어 구석기시대 연구의 표본이 되고 있습니다,
충북 청원(청주) 두루봉 동굴에서는 4만 년 전 어린아이 (흥수 아이)의 인골이
발굴되었는데요 매장된 흔적과 꽃을 뿌린 흔적이 남아있어 매장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 유적이라고 하고요..
단양 수양개에서는 고래와 물고기를 세긴 조각품들도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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