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한국사 아는척하기 ( 이땅의 사람들)

빗살무늬 토기가 뾰족하고 빗살무늬인 이유..

기차타고시베리아 2022. 1. 1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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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들고 강으로 바다로~


사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시작은 몇십 만년이나 차이가나니.. 신석기시대는
구석기시대와 환경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는데요 일단 신석기시대가 시작되기 전
지구는 오랜 빙하기가 지나고 서서히 따뜻해지지 시작했습니다.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높아지자 빙하는 녹아갔고 해수면은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신석기 인들에게는 물고기와 어패류 같은 새로운 영양식품을 쉽게 먹을 수
있게 되었는데요.. 인간들 뿐만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먹을 것을 구하기 좋은 강가나 바닷가로
모여들었을 테니.. 인간들이 사냥과 채집을 하기에도 더 물가가 훨씬 유리했습니다.

신석기인 거주지

안정된 식량 화보를 위해 바다나 강으로 이동한 신석기 인들은 다양한 어패류 뿐만 아니라
수렵과 채집을 통해 식량을 확보해 나갔는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따듯하고 물이 풍부한
곳에 자리를 잡은 신석기인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농사는 이들을 더욱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지요..

농사가 어떻게 처음 시작이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같은 자리에 같은 곡식이 자라는
것을 본 신석기인들이 남은 곡식을 빈 땅에 뿌려보면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젖은 땅에 뿌려서 농사를 시작한 신석기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뿌리지 않고
땅에 살짝 심어 놓으면 더 잘 자란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었을 테지요..

이렇게 먹을 것이 풍족해진 사람들은 먹고 남은 식물을 저장해 두고 싶었는데요..
그동안 가죽 주머니나 식물로 만든 바구니는 물과 불에 취약했습니다.

이러한 고민에서 인류는 음식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서 흙을 구워 그릇을 만들었는데요
신석기를 대표하는 토기가 바로 빗살 무니 토기입니다.

식량을 많이 담을 수 있는 토기는 당시 인류에게는 최첨단 발명품이었을 텐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토기는 신석기 인들의 생활필수품이 되었습니다.

뾰족하고 빗살무늬인 이유


신석기 인들은 토기를 만들 때 이상하게도 바닥을 뾰족하게 만들었는데요..
그 이유는 신석기인들이 강이나 바다에서 살았다는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쉽게 바닥이 변형되는 모레 사장 위에 그릇을 안전하게 고정시키는 방법은 바닥에 팍~
꽂아 놓는 것이었을 테니까요..


이런 토기는 물가에 사는 사람들에게 음식의 저장뿐이 아니라 요리까지 가능하게 했는데요
한결 부드러워진 음식으로 영양상태가 좋아진 신석기인들은 수명이 길어지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안정된 정착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뾰족한 모양의 빗살 무니 토기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아이콘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네요..



토기에 무늬를 넣은 이유는 토기를 구울 때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추측되는데요.. 굳이 빗살로 무늬를 넣은 이유는 비가 오기를 기원한다거나 생선의 뼈 모양을
그려 넣어 식량수확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의미가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토기 이외에도 신석기 인들은 가락바퀴나, 뼈바늘로 옷을 만들어 입고 동그란 반지하
형태의 움집을 만들어 생활하는등 점점 새로운 발명을 해가면서 정착하여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정착생활을 하면서 신석기시대부터 부족사회 형태로 모여 살게 되었는데요..
농경은 애니미즘(모든 물건에 정령이..), 샤머니즘 ( 하늘과 연결된 사람..), 토테미즘 (짐승을 숭배..)
같은 대자연에 대한 원시적인 신앙이 생겨나게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지중 그 크기와 가치로 가장 높게 평가받는 곳은 바로 서울 암사동
유적지입니다.

암사동 유적지는 크기나 규모뿐 아니라 많은 양의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한데요.. 암사동 유적이 세상에 처음 얼굴을 드러낸 것은 1925년으로 당시 대홍수로
한강변의 표토가 벗겨져 나가면서 토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외에 평양 남경, 봉산 지탑리 유적지에서는 탄화된 좁쌀이 발견돼 농사가 시작됐다는
증거를 보여주었고요.. 부산 동삼동에서는 조개껍데기 가면이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양양 오산리에서는 다량의 토기가 발견되기도 하고 온천 궁산리에서는 가락바퀴
뼈바늘이 출토되기도 하면서 한반도에서도 신석기 인들이 열심히 살아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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