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당나라의 상황
당나라에서 이세민이 아버지와 형제들을 죽이고 왕권을 차지했을 때 고구려의 왕은
영류왕이었습니다.
당고조 이연과 뒤를 이은 이세민은 나라를 세우고 내부의 세력들을 잠재우느라
힘을 많이 소비한 입장에서 한동안 외부의 적들과의 전쟁은 자재를 했는데요..
당나라는 고구려와도 부딪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를 원정하려고 했다가 곤죽이 되도록 처맞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요..
고구려의 입장에서도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피해를 많이 본 상황에서 당나라가
바로 다시 쳐들어 오는 것만은 막아야 했기 때문에 당나라와 교섭에 나서는데요..
이렇게 당나라와 고구려는 조공책봉 관계를 맺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 영류왕을
책봉하고 고구려는 당나라에 조공을 보내는 선에서 관계를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지금의 총리급 관리인 고구려의 막리지에 앉아 있던 사람이 바로
연개소문이었고 그와 군벌세력들은 영류왕의 이런 행동에 극렬히 반대를 합니다.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기개를 잇는 대고구려가 당나라 따위에게 조공을 바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는데요..
선조의 기개를 잊지 잊지 않겠다는 것도 좋은 말이지만 나라를 위험에 빠드릴 수도
있는 위험한 생각이기도 했었습니다.
연개소문
연개소문의 가문은 고구려에서 대대로 막리지를 해오고 있었던 뿌리 깊은 귀족군벌
집안이었는데요...
수나라와의 전쟁도 이겨낸 고구려의 군벌세력들은 당나라에 머리를 조아리는 것을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수치라고 여겼습니다.
영류왕의 '친 당나라 노선'에 대해서 막리지 연개소문은 계속해서 반발을 하며 당나라와
한판 붙어보자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영류왕이라고 당나라가 좋아서 그들과 조공 관계를 맺으려 한 것은 아닐
것인데요.. 그저 당장의 전쟁을 피하고 힘일 길러야 한다는 생각이었을 듯해요.
하지만 연개소문이 몇몇 군벌세력을 규합하여 왕인 자신을 몰아붙이자 영류왕은
점점 위기감을 느끼게 됩니다.
영류왕 VS 연개소문
대대손손 막리지를 해오고 있었던 만큼 고구려에서 연개소문과 그 일족들의 권력은
왕을 제치고 나라를 쥐락펴락 할 수도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영류왕은 연개소문을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계획을 짜기 시작하는데요
이 암살 계획이 그만 중간에 탄로가 나게 됩니다..
왕이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것을 알아버린 연개소문은 자신을 따르는 군벌세력들을
이용하여 반대로 영류왕을 죽이려고 합니다.
642년 10월 연개소문은 천리장성 축조 현장으로 떠날 자신의 군대 열병식에
영류왕측 대신 180 명을 초대한 후 이들을 모두 살해하고
평양성으로 쳐들어가 영유왕 마저 죽여버리는 데요.. 이를 '막리지의 난'이라고 합니다.
연개소문은 꼭두각시 왕인 보장왕을 앉혀놓고 자신은 대막리지라는 위치에 스스로
오르게 됩니다.
이로써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실질적인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던 당나라 이세민은 자신이 책봉한 영류왕을 죽이고 허수아비
왕을 세워놓은 '반당나라'파 연개소문을 그냥 두고 보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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