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
한반도의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었지요.. 한무제의 침략으로 고조선이 무너지고 난 후
한나라는 고조선의 영토에 4개의 군을 설치하고 다스리는 데요. 낙랑군, 임번군, 진도군,
현도군 이렇게 한나라가 설치한 4군을 한사군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사군의 지배를 뚫고 옛 고조선의 영토에는 다시 별도의 한민족 국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그리고 삼한( 마한, 진한, 변한) 이었습니다.
무리 지어 다니던 구석기시대에서,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시대에는 씨족, 부족사회를 이루었고
청동기 시대에는 군장 사회를 맞이했는데요.. 철기시대에는 이 군장들이 모여서 연맹을 이룬
연맹 왕국이 등장하게 됩니다.
연맹 왕국이다 보니 아무래도 왕이라고 뽑혀있는 사람도 왕권이 강하지는 못하였지요..
고조선이 망하고 생겨난 부여와, 고구려가 바로 연맹 왕국이었는데요.. 옥저와 동예, 마한, 진한
변한 은 연맹국가를 형성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복속되고 맙니다.
부여, 고구려
부여는 5 부족 연맹체로 왕을 제외한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의 짐승의 이름을 가진 군장들이
다스리는 사출도가 있어서 왕의 부족까지 합쳐 5 부족 연맹국가였는데요.. 왕권이 약해서 흉년이
들면 다른 군장들이 왕을 몰아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부여는 아무래도 북쪽 초원지대에 있다 보니까 유목과 농사를 함께 지었는데요.. 말, 주옥, 모피를
주로 생산했다고 하고요. 농경지역들이 10월에 제사를 지낸것과 다르게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아
12월에 영고라는 제천행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이승의 삶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왕이 죽으면
가족과 노비들을 함께 묻는 순장이었고요.. 말발굽으로 점을 치는 우제점법을 좋아했다고 해요
남의 것을 훔치면 12배로 갚게 하는 1 책 12법등 4조 목 법이 있었고.. 중국의 음력인 인력을 사용했습니다
고구려는 왕과 대가들이 각각 사자, 조의, 선인이라는 관리를 거느리고 나라를 다스렸는데요..
워낙 척박한 산악지대에서 생활하다 보니 농경보다는 다른 나라의 식량을 힘으로 뺏어오는
약탈경제가 주를 이루었고요.. 옆에 있던 옥저가 주로 피해자였습니다.
고구려는 데릴사위제가 있었는데요.. 조금 어려운 말로 서옥제라고 하고요..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사를 지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고구려는 옥저의 추수가 끝나면 주로 약탈을 해서 저장시설(부경)에 저장했다
먹었는데요.. 약탈을 하는 부여는 추수 후 하늘에 제사를 지내 감사를 표시했고 옥저는 따로
제천행사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어차피 고구려 놈들이 다 뺏어가니 하늘에 감사하고 싶지도
않았나 봐요..
옥저, 동예, 삼한
지금의 함경도 지역의 옥저와, 강원도 지역의 동예는 읍군과 삼로라는 군장들이 다스렸는데요
왕이나 대군장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연맹체 형성 단계에 이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옥저는 농사도 잘되고 바닷가 근처에서 소금, 어물 등 해산물을 많이 수학할 수 있었는데요..
고구려가 자꾸 괴롭히니까.. 나중에는 그냥 고구려에 공물을 바쳤다고 해요.. 그리고 고구려와는
반대로 며느리가 될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시댁에 가서 생활하는 민며느리제가 있었고요..
시체를 가매장했다고 뼈를 추슬러 가족 공동묘에 모시는 골장을 했고 따로 제천행사는 없었습니다.
동예는 단궁(짧은 활), 과하마 (작은말), 반어피(바아 표범가죽)가 유명했고요 방직 기술이
뛰어났다고 해요. 책화라는 풍습이 있어서 각 군장의 지역을 침범하는 것을 엄격이 막았고
결혼은 같은 군장 내 다른 씨족과 하는 족외혼을 한걸 보면 신석기의 풍습을 계속 이어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10월 무천이라는 제천행사를 지냈습니다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도 연맹체로 성장하지는 못하였는데요.. 큰 부족장은 신지, 견지
작은 부족장은 읍체 부례가 다스렸습니다.
삼한은 경우 군장국가증 가장 힘이 셌던 목지국이 삼한을 주도했다고 하는데요.. 삼한이
다른 부족 국가와 다른 점은 정치적인 지도자 신지, 읍 차등이 다스리는 지역도 있지만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이 다스리는 소도라는 지역이 따로 존재했다는 점입니다.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지요..
남쪽에 있던 삼한지역에는 벼농사가 발달했는데요.. 벼농사를 위해서 저수지를 축조했고..
변한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매개로 한나라의 낙랑군과 일봉인 왜 나라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기도 했고요.. 씨 뿌리는 5월에 수릿날, 수확을 하는 10월에 계절제라는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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