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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마르코스 (BBM), 필리핀 대통령 당선 (독재자의 아들)

기차타고시베리아 2022. 5. 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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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봉 마르코스 (BBM)


5월 10일 필리핀 대선에서 대통령에 마르코스 후보가, 부통령엔 사라 두테르테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습니다.

오전 5시기준 개표가 95% 가까이 진행된 상황에서 마르코스는 3015만 표를 획득해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을 두배 이상 압도적 표차로 따돌린 것이었습니다.

대통령부통령
마르코스 주지어 와 사라 두테르테 / 사진출처 연합뉴스


마르코스 주니어는 필리핀의 1987년 대통령 단임제 개헌을 촉발시킨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외아들로 아버지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들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BBM)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 마르코스는 가문의 정치적 고향인 북부 일로코스 노츠테주에서 상원의원과 주지사를
지내면서 정치적 기반을 닦았는데요..

2016년에는 부통령 선거에 나왔다가 이번 대선에서 맞붙은 로브레도 현 부통령에게
근소한 차이로 패배한 바 있었습니다.


독재자 아버지 마르코스



아버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0년 동안 정권에 앉아 수천 명의
반대파를 체포하고 고문 살해한 독재자로 악명을 떨쳤다가..

1986년 일어난 민주화 운동 '피플파워' 혁명으로 하야한 인물입니다.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33년 정치가인 아버지의 정적을 살해했다고 채포 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 상소하여 1년 뒤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는데요..

1965년 필리핀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이 됩니다.

박정희
1917년생 동갑내기 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페르드난드 마르코스


대통령 집권 초기에는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공산주의 국가들과도 외교를 맺으며 높은
지지율을 얻어 1969년 재선에 성공하였지만

경제 사정 악화와 개혁 실패 등에 부딪치며 독재 정치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수많은 부패를
일삼았다고 합니다.

1972년 9월 계엄령을 선포하여 정당활동을 금지하고 정적과 언론인을 투옥하면서 독재정치를
이어 왔지만 결국 피플파워 혁명으로 하와이로 도망치듯 망명을 하였습니다.

신문
1986년 마르코스 망명을 보도한 신문

당시 마르코스가 부정 축재했던 재산의 규모는 약 10억 달러 (12조 원) 정도라고 하고요..
하와이로 떠나는 미 공군기 수송기에는 현금 수십억 원과 셀 수 없이 많은 골드바가 있었다고
전해 집니다.

당시 필리핀 1인당 국민총생산( GDP )이 1500 달러도 되지 못한 수준이었으니 부정부패의
수준이 어마어마한 상황이었지요..


마르코스 가문의 부활


1990년대 초반 필리핀으로 돌아온 아들 봉봉 마르코스는 다시 정치 일선에 나섰고..
아버지의 부정부패는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버지와는 다르게 부드러운 이미지로
국민에게 다가섰습니다.

유세장
마르코스 주니어 선거유세장


봉봉 마르코스는 아버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집권했던 1960년 애 당시에는 어떤 인권유린도
없었으며 오히려 아버지의 재임기간이 필리핀의 전성기라고 선전하고 다녔습니다.

아버지 마르코스의 피해자들이 들으면 관에서도 벌떡 일어날 소리였지만.. 그 당시 독재를
경험해 보지 못한 필리핀의 젊은 세대는 대통령으로 만들어 줬습니다.

두테르테 가문과 연합



이번에 부통령 자리에 앉은 사라 두테르테는 현재 대통령인 두테르테의 장녀인데요..
아버지의 정치적 근거지인 다바오시 부시장으로 2007년까지 정치 수업을 받았습니다.

아버지 두테르테 대통령은 6년 단임제 헌법 개정을 여러 번 시도하는 등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려는 시도를 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는데요..

부녀
두테르테 부녀 / 사진출처 뉴시스


독재자의 아들과, 스트롱맨의 딸이 손잡고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이 되었으니
소수의 권력자 집안이 필리핀 정가를 쥐락펴락 한다는 특유의 가문 정치가 이번에도
위력을 발휘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대통령 당선은 필리핀 독재가 가문이 시민들에게 쫓겨난지 36년 만에
다시 정권을 잡은 셈이어서 앞으로의 그의 횡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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