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한국사 아는척하기 ( 이땅의 사람들)

나당전쟁 ! 매소성, 기벌포 그리고 구세주 토번 ( 티벳 )

기차타고시베리아 2022. 10. 3.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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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VS 당나라



백제를 멸망시킨 이후 아직 고구려와 본격적으로 싸우기 이전부터 신라는 영토 문제에서부터
당나라와의 삐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신라와 당나라가 연합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치려고 했을 때는 백제 지역은 신라가 차지하고
고구려 지역 중 대동강 이북은 당나라가 차지하기로 했었는데요..
막상 백제가 무너지자 당나라는 백제 지역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해 관리하려 하였습니다

지도
웅진도호부 (KBS 화면 캡쳐)


신라의 입장에서는 왕족의 자식들을 볼모로 보내고 당나라에 군권의 일부까지 가져다
바치다시피 하면서 전쟁을 이끌어 왔지만 땅을 더 넓히기는 커녕 당나라에 나라를 통째로 빼앗길
위험에 처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런 불만 속에 663년 당나라는 신라를 계림대도독부로 부르며 문무왕을
계림주 대도독으로 임명하는 등 신라로서는 두고 볼 수 없는 행태를 보였는데요..

신라까지 복속하여 한반도를 당나라의 하나의 지방행정구역으로 삼겠다는 야욕을 그대로
들어내는 것이였습니다.

지도
안동도호부 (  KBS 화면 캡쳐)


그리고 668년 고구려까지 명망을 하자 당나라는 고구려 지역에 다시 안동도호부를
설치하면서 이 땅을 완전히 차지하려고 하는데요

당나라의 한반도 정복계획과 신라의 삼국통일 계획이 정면으로 부딪치면서 이제
당나라와 신라의 전쟁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개전, 매소성 전투



668년 고구려 멸망 후, 신라는 당의 야욕과 하대에 더는 참지 않고 맞서기로 결심합니다

670년 3월, 신라의 설오유와 고구려 부흥 세력의 고연 무가 지휘하는 연합군 2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요동의 당나라 오골성을 선제공격하는데요. 이때를 나당전쟁의 시작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골성
오골성터

하지만 이러한 신라의 도발을 무시하거나 얕잡아 보던 당나라가 대군을 일으려 본격적으로
신라를 공격해 들어온 것은 4년 뒤인 674년 이었는데요..

이후 신라는 당시 동북아 최고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당나라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합니다.

전투
매소성 전투 기록화 ( 전쟁기념관 제공)


하지만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전쟁을 이어오던 신라의 군대 역시 만만한 상대가 아니였는데요
고구려의 기병을 상대하기 위해 익힌 장창 부대 전술과 실전 경험은 당나라를 상대로도 큰 효과를 발휘했고

결국 대동강 인근의 매소성에서 말갈족과 당나라 군대로 구성된 연합군을 격퇴하며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시작합니다


뜻밖의 도움 토번 그리고 기벌포 해전


당나라 군이 매소성에서 패했을 이 시기 신라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준 동화 줄 같은 소식이
전해지는데요..

바로 당나라 서쪽 토번 국 (지금의 티베트) 이 당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번 입장에서도 당나라가 동쪽에서 한반도를 공격하려고 군대를 동쪽으로 몰아넣은
이때가 자기들로서도 절호의 찬스가 되었던 것이었는데요..


토번의 공격은 당나라로 하여금 동쪽에서 신라와의 전쟁을 빨리 끝내 벼려야 하는
절박한 이유가 되어 버렸습니다.

당나라는 결정을 해야만 했습니다.
신라와의 전쟁을 계속 이어가느냐 아니면 체면이 깎이더라도 두고 돌아가느냐...

결국 육지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당나라의 사령관 설인귀는 바다에서 신라의 방어선을
뚫어 버리기로 결정하고 수군을 동원해 기벌포로 향하는데요..

지도
기벌포


처음에는 신라가 밀리는 듯하였지만 총 23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신라는
기벌포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676년 3월 당나라는 한방도의 반대편인 대륙 서쪽에서 토번 군에게 국경선 안쪽까지 공격받기
시작했고 매소성 전투에서의 패전을 기점으로 신라 전선에서의 퇴각을 결정합니다.

기벌포 전투를 끝으로 당나라는 신라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백제 땅을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웅진도독부도 요동으로 철수시켜 7년간에 걸친 나당전쟁은 끝이 납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진정한 통일 왕국의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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