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동북아 정세
642년 고구려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죽이고 고구려를 차지했으며, 백제의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해 들어갑니다.
고구려를 침공할 기회를 엿보고 있던 당태종 이세민은 연개소문의 정변을 명분 삼아
침공 준비에 들어가고 백제의 공격을 받은 신라는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대당 강경파가 권력을 잡은 고구려는 이제 당나라의 침공에 대비를 해야 했으나
당나라가 북쪽으로 쳐들어 왔을 때 남쪽의 백제와 신라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고..
신라를 공격한 백제는 서쪽으로는 당나라 북쪽의 고구려가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당나라가 고구려 보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 백제를 먼저 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곁가지로 왜 나라는 이전부터 오랫동안 백제와 가깝게 지내고 있지요..
아무튼 7세기 중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각국은 국운을 건 외교전쟁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고구려는 일단 대당 강경노선을 선택했기 때문에 언제가 되었던 당태종 이세민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연개소문은 당나라 북서쪽 설연타에 계속해서 사신을 보내 함께 당나라에 대항하자고
설득하고 있었지만 설연타는 이세민이 고구려로 정벌을 떠날 때까지 확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백제의 공격을 받은 신라의 김춘추는 제일 처음 연개소문을 찾아갔지만 연개소문은
신라를 거절했고 신라가 이후 당나라를 찾아가자 고구려는 백제와 여제동맹을 체결합니다.
백제
신라에 대한 복수의 의도도 있었겠지만.. 이는 명분이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결국
백제 의자왕은 신라를 무너뜨리고 그 땅을 차지하고 싶었고...
642년 신라를 공격해 순식간에 40여 개 성을 빼앗아 버립니다.
의자왕은 신라를 공격하고 고구려와 화친을 맺음과 동시에 신라가 당과 교섭하는
길을 막기 위해서 당항성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백제가 신라와 싸우면 고구려는 당나라를 쳐 당나라가 신라를 구원하지
못하게 하고 고구려가 당나라와 싸우면 백제가 신라를 쳐 당을 응원하지 못하게 하자는
동맹을 맺게 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백제는 의자왕은 당나라와 끈도 놓지 않고 있었는데요..
백제는 당태종 이세민에서 백제의 최고 고급 사치품이였던 황칠 갑옷을 선물하며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서 셈세한 외교활동을 벌였습니다.
이후 당나라 이세민이 고구려를 침공하여 안시성에서 발이 묶여 있을 때 신라는 밑에서
고구려를 공격했고 백제는 신라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당나라가 안시성에서 고구려에게 탈탈 털리고 후퇴하는 모습을 본 백제는 완전
고구려 쪽으로 돌아서게 되고 여제동맹은 백제가 망하는 660 년 까지 지속됩니다.
신라
신라의 외교관 김춘추는 642년 백제가 쳐들어왔을 때 제일 처음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연개소문은 얼토당토않은 조건들을 내걸며 오히려 신라의 땅을 빼앗으려고
들었고.. 김춘추는 도망치듯 신라로 돌아오는데요.
김춘추는 왜 나라에도 갔지만.. 오랫동안 백제와 친분 관례를 맺고 있던 왜 나라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자세로 일관했고 김춘추는 소득 없이 다시 돌아옵니다
이제 김춘추와 신라가 매달릴 수 있는 나라는 당나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김춘추는 당나라를 찾아가 동맹일 맺을 수 있도로 갖은 노력을 다하였고 당나라
입장에서도 고구려를 제압하기 위해서 자기들을 도와 남쪽에서 전투에 나설 파트너가
필요했습니다.
결국 648년 두나라는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기 위한 군사적 결탁을 한층 더 공고히
하고 두나라를 명망 시킨 뒤 대동강을 경계로 한반도를 당나라와 신라가 나누어
통치한다는 비밀 협약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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