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군사국가 일본.
국제정치적으로 러일전쟁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이 국제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러시아라는 대제국을 상대로 거둔 일본의
승리는 여로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는데요..
일본은 흑선에 의한 개항 이후 불과 60년 만에
국제사회에서 당당히 이름을 내밀 정도가 되었고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의 길을 걷게 되었음을
알린 전쟁이였습니다.
또한 100년 넘게 이어져 오던 그레이트 게임의
마지막을 장식한 전쟁이었으며 슬프게도
조선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쟁 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러일전쟁은
지옥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사람들에게도 지옥을 선사한 전쟁이었지요.
'203 고지'를 향한 일분군의 '닥치고 진격'은
일본 군부의 무능함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하나의 촌극이었으나 일본을 러일전쟁 이후
어떠한 교훈도 도출해 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정신력이 화력을 이길 수 있다" 거나
"사람보다 물자가 중요하다" 하는 이상한 논리가
일본군의 머릿속에 확고하게 박혀 버렸지요..
일본의 가난한 나라이며 소모전 양상으로
흘러가는 근대 전의 물량을 감당해낼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전재하에 강조되는 논리였습니다.
최고 엘리트들이 모이는 당시 일본이
육군대학 출신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내놓는
논리는 전쟁에 미친 광신도의 같은 것이었어요..
1907년 이미 일본 군부는 민간의 통제 밖에
있는 조직이 되어 버렸습니다.
국가가 휘두르는 합법적인 폭력을 다루는
군대가 합법적으로 정치에도 개입을 했으니..
일본은 당시 합법적인 군사국가였습니다.
재밌는 것은 러일전행 이후 일본의 육군과
해군은 각각의 서로 다른 가상의 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인데요..
대륙 진출을 목표로 한 육군은 계속해서 러시아를
가상의 적국으로 두었고
해군은 미국을 가상의 적국으로 꼽았습니다,
육군은 메이지 유신 이후 한결같이 대륙 팽창을
주장했는데요 조슈번 출신의 육군의 주도한
전행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해군은 동아시아의
패권은 이미 일본이 쥐고 있으니 태평양으로
서진하고 있는 미국을 견재하여 동아시아의
일본의 패권을 지켜내자고 하고 있었습니다.
한나라의 군대가 각각 다른 가상의 적을
설정하고 따로따로 준비를 한다는 것이 참
발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일본은 그걸 해냈습니다.
여기에는 조슈번 이 장한 육군과 사쓰마 번이
장악한 해군의 알력 다툼이 크게 작용을
한 것이었지요..
이런 해군과 육군의 갈등은 가뜩이나 부족한
일본의 자원을 비효율 적으로 사용하게 만들는데요
해군과 육군이 무기도 따로 만들어서
호환이 도지 않은 경우도 많았고 태평양 전쟁
당시에는 육군이 따로 항공모함과 잠수함을
개발하기 하는 등 바보 같은 짓은 갈수록
심해 지기만 했다고 합니다.
여전히 고통받는 일본인
일본은 청일전쟁으로 시작된 전쟁국가의 길을
러일전쟁에서 확립했고 이후 2차 세계대전
때까지 일본 국민은 전쟁국가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결과는 참혹했지요.. 전쟁터에 끌려나가지
않아도 전비로 내놓아야 하는 세금 때문에
언제가 가난해야 했고
전시 때는 세금과 생명을 같이 내놓아야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은 잠시 일본을 위기에서 구했지만
대공황으로 다시 나락으로 빠져들었고
이후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으로 나가는
수순을 밟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일본 국민들은 경기가 좋든 안 좋든,
전쟁을 하든 안 하든 언제나 희생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던 것이었어요..
지금 코로나 올림픽으로 희생당하고 있는
일본 국민들의 모습을 보명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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