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츠라 태프트 밀약.. 2차 영일동맹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갈 무렵인 1905년
8월 12일 제2차 영일동맹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이 조약에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조항이
있었는데요
" 영국은 일본이 조선에서 가지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이익을 보장하며, 일본은 영국의 인도 지배
및 국경 지역에서의 이익을 옹호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내용이였습니다.
영국에 공식적으로 일본의 조선의 지배를
인정하는 것이어요..
그리고 이 2차 영일동맹이 채결되기 전인
1905년 7월 29일에는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특사인 육군 장관 '윌리엄 태프트'와
일본 수상 '가쓰라 다로'가 도쿄에서 만나
협정을 맺었는데요.. '가쓰라 태프트 비밀각서'
라고 불리는 '가쓰라 태프트 밀약'입니다.
가쓰라 태프트 밀약의 주요 내용은
"미국이 미국-스페인 전쟁으로 영유한 필리핀을
통치하고 일본은 필리핀을 침략할 의도를 갖지
않으며 동아시아의 평화 유지를 위해
미국, 영국, 일본은 동맹관계를 확보하고
미국은 러일전쟁의 원인이 된 조선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드는 것을 승인한다"였습니다.
자~ 이제 영국과 미국 두 초강대국이 일본의
조선 진출을 허락했습니다.
영국은 일본과 이전부터 영일동맹이 있었으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미국의 이런 행동은 정말
조선의 뒤통수를 제대로 때려버린 일이었는데요..
조선에 대한 야욕을 들어내 놓고 서로 으르렁
거리던 러시아와 일본과 달리 신사적인
이미지로 포장된 미국이 조선을 배신한 것이었어요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에서만 보더라도
미군은 일본군과는 다르게 무언가 정의롭고
신사적이고.. 조선인들을 도와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드라마와는 너무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미국도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하게
일본과 조선을 이용했던 것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을사조약과 을사오적
러일전쟁의 결과물인 포츠머스 강화조약
가쓰라 태프트 밀약, 2차 영일동맹 조약으로
사전작업을 마친 일본은 1905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을 통해 일본의 보호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일본은 조약 체결을 계속 미루고 지연시키는
고종을 압박하기 위해 군대로 덕수궁을 포위하고
포을 덕수궁 방향으로 조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군인을 대동하고
조선의 각료회의에 들이닥쳐 각료들에게
동의를 요구합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고종이 각료회의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고 거짓을 전하면서 대신들의
의견을 다수결로 결정하자며 각료들의 찬반
의견을 묻기 시작하는데요..
이때 제일 먼저 찬성의 뜻을 말한 사람이 바로
학부대신 이완용이었습니다.
뒤이어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
농상공부 대신 권중현, 그리고 외부대신 박제순이
찬성의 뜻을 밝혔고 이 다섯 명은 이후
을사오적으로 불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 참정 대신 한규설, 탁지부대신 민영기 ,
법부대신 이하영은 끝까지 반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국세와 외부대신의 날인이 있어야 할
조약에 국세를 찾지 못하여 외부대신 박제순의
도장만 찍히게 되었다고 해요...
조약의 내용은
1. 일본은 조선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 지휘하며, 일본국의 외교 대표자 및 영사가
외국에 재류하는 조선인과 이익을 보호한다
2. 일본은 한국과 타국 사이의 현존하는 조약의
실행을 완수하고 조선은 일본 정부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국제적 조약을 맺을 수 없다.
3. 일본은 조산 황제 밑에 통감을 두어 외교 사항을
관리하고 한국 황제를 만날 권리를 갖고... (중략)
즉..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대한제국은 국제 외교에서 주권일 잃어버리게
되어 버린 것이었으니 결국 조선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는 의미였지요...
그리고 5년 뒤 1910 년 8월 29일
전면적으로 국권침탈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한일병합은 국제정치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띠는데요.. 일본은 식민지를
확보한 명실상부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고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이 대륙 국가가 된 것이었죠.
1895년 삼국간섭 이후 일본은 러일전쟁을
승리하고 '가쓰라 태프트 밀약' '2차 영일동맹',
'포츠머스 조약', '을사조약' 을 통해 물 흐르듯
조선을 획득했고 식민지를 확보하면서
제국 열강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은 너무 늦게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 이었는데요..
일본이 조선을 병합한 1910년은 제국주의
자체가 점점 저물어 가는 시기였던 것이었습니다.
불과 4년 후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전쟁이 끝나가는 1918년 미국의 닐슨 대통령은
민족 자결주의를 들고 나왔는데요.. 이는 제국주의
시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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