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사카모토 료마의 삿초동맹과 도쿄의 탄생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5. 2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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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중국은 2차 아편전쟁에서 또다시
패배하면 서 굴욕을 당하게 되고 이는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미국은 겁을 먹은 일본에게 새로운 조약을
맺도록 강요했고 1858년 미일 수호통상조약
이 맺어지게 되는데요..
이에 질세라 영국, 러시아 , 프랑스, 네덜란드도
새롭게 일본과 통상조약을 맺었습니다.
웬만하면 그냥 다 들어준 것이었어요..

이를 지켜본 웅번들은 '무능한 막부가 일본을
망하게 하고 있다'라고 하며 막부에게 빼앗긴
정권을 덴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막부와 웅변의 대결이 시작되었고
1858년 사쓰마와 조슈 등 웅변의 인사
100명이 막부에 의해 처형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안세이 대옥'으로 불립니다

사쿠라다문밖의 변 

웅번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겠죠..
얼마 후 웅번출신의 무사들이 안세이 대옥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인 '이이 나오스케를' 대낮에
난도질을 가해 살해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사쿠라다 문밖의 변'이라고 불립니다

이 사건으로 막부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고
사쓰마와 조슈도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던 중 사쓰마에서는 번주의 아버지의
행렬 앞을 지나가던 영국인들을 무사들이
공격하면서 영국인 한 명이 죽는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화가 난 영국은 사쓰마를 정벌하려고
군함 7척을 몰고 왔지만
사쓰마번은 육상 포대 80문을 이용하여
영국군을 공격했고 거친 날씨와 예상외의 공격에
당황한 영국군은 퇴각하고 말았어요.
이 전쟁은 '사쓰에이 전투'로 불립니다

사쓰에이 전투

이 전쟁에 사쓰마번도 영국 해군의 포격으로
성, 민가, 관공서 등이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고
결국 막부의 중재로 영국과 평화교섭을 하였지만
이를 계기로 사쓰마는 대책 없이 외국을
배척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쓰마는 양이파에서 개국파로 돌아서지만.
막부에 반대하는 점은 그대로였어요.

하지만 조슈는 달랐습니다. 교토의 텐노를 보호하고
있던 조슈는 외국세력을 모두 몰아내야 한다며
미국 상선, 프랑스 상선, 네덜란드 상선을 차례로
포격하고 통행을 차단하게 됩니다.

이런 조슈의 도발은 서양세력과 막부, 사쓰마를
자극했고 공동의 적을 가진 막부와 사쓰마는
손을 잡게 되는데요
막부와 사쯔마는 조슈가 장악하고 있는 교토를
공격하기까지 이르게 됩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양세력도
연합함대를 구성 17척의 군함과 병력을 동원하여
조슈의 근거지인 시모노세키를 점령해 버리지요.

한방 세게 맞은 조슈도 이제야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었는지.. 순순히 막부에 항복을 했어요..
이때 중요 인물들은 모두 피신을 한 뒤였습니다
피신항 사람들 중에는 '이토 히로부미'도
속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시기..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다는
바로 그 인물 '사카모토 료마'가 등장합니다.

그는 '막부 타도'와 '왕정복고'등의 공통된
목표가 있으니 사쓰마와 조슈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1866 년 사쓰마-조슈의
'삿초 동맹'이 비밀리에 맺어지게 됩니다.

이 삿초동맹은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의
핵심이며 지금까지도 일본의 정계를 움직이는
세력들이기도 하니 일본의 정치라는 것이
얼마나 발전을 하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암튼 이를 모르고 있던 막부는 조슈를
끝장내고자 공격하지만 삿초동맹에게
패배하고 말았는데요.. 일게 번에게 막부가
패배했으니 막부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

삿초동맹은 에도로 진격해 막부를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이때 사카모토 료마의 주장은 '
' 이는 서양세력들에게만 좋은 시나리오이니
일단 막부를 없애고 덴노를 최고 통치자로
만든 뒤에 다이묘들이 의원이 되어서
서구식 의회를 만들자~' 였던 것이었습니다.

다이묘들이 의원이 되면 전국의 1/4을 차지하고
있던 막부는 손쉽게 제1당이 될 수 있었고
웅번도 계획대로 덴노에게 권력을 되돌려 줄 수
있게 되었으니 막부나 웅번에게 모두 좋은
아이이어였던 것이었지요..
바로 이 아이디어가 '대정 봉환'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이때 의원이 된 다이묘 가문이 대를 이어가며
아직도 일본의 국회의원을 하고 있기도 하니 참
일본은 민주주의라고 하기도 뭣한 것 같아요..

삿초동맹은 쇼군 요시노부를 파직시키고 영지를
몰수하려고 했는데요 이에 반발한 막부는
삿초동맹과 다시 전쟁을 일으켰지만 무참히 패배하고
에도로 도망치고 항복하게 됩니다.

덴노의 도쿄순행

이후 삿초 동맹과 덴노는 에도에 입성하게 되고
1868년 에도를 새 수도로 정하면서 이름을
에도에서 도쿄로 바꾸며 덴노 일행이
교토 궁성에서 나와 도쿄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권력을 잡은 삿초동맹과 덴노는
일본을 대대적으로 개혁하려고 시도하게 되는데
바로 '메이지 유신'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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