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청일전쟁과 한반도 ! (시모노세키 조약의 의미)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6. 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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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일본을 겨눈 비수와 같다"

일본 육군대학에서  장교들을 훈련시킨
독일은 '클레멘스 빌헬름 야콥 메켈' 소령은 파견을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뼈있는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클레멘스 빌헬름 야콥 메켈

육군대학은 조슈번 출신이 장악한 육군의
엘리트 양성 코스였는데요..
독일의 육군대학을 모방한 일본 육군대학은
미래의 엘리트 간부를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는데요.. 이때 파견된 메켈 소령은
일본 육군의 기틀을 잡은 사랍이었습니다.

이런 메켈 소령이 한반도를 비수라고 평가
했었던 것이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성공적으로 근대로 넘어간
일본은 한반도를 눈길을 돌렸는데요..
메켈 소령의 이 한마디는 더욱 일본이 한반도에
집착을 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은
청나라가 가장 크게 가지고 있었는데요.. 당시
일본은 외교를 통해 청나라를 밀어내고자
노력했지만 임오군란을 통해 조선인들의
일본에 대한 반감을 확인하였고
갑신정변 때 청나라의 영향력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갑신정변 이후 일본을 군사적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고자 돌아서게 됩니다.

문제는 당시 군사력은 청나라가 일본을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는데요.
청나라는 7000 톤급 세계 최대급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4000 톤급 전함도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청나라 북양함대 함선

갑신정변 이후 일본은 해군력 증강에 나섰고
육군은 편제 자체를 대륙 작전형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에 따라 군사비 지출도 가파르게 상승했는데요
갑신정변 이전에는 예산의 16%를 차지했던
일본의 군사비가 조선의 갑신정변 이후
26%로 늘어납니다.

당시 세계열강들은 일본이 아무리 군사력을
키워봤자 청나라의 상대는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이유는 체급 차이가 너무
크게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전쟁은 일본의
압승으로 끝이 납니다.
당시 세계열강은 청일전쟁을
'근대와 전근대의 대결'로 분석했다고 해요..
병사들의 자질에서부터 차이가 났다는 것이지요..

시모노 세키 조약

청일전쟁의 전후 처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1조 청나라는 조선이 완전무결한
   자주독립국임을 확인한다.
2조 3항 청나라는 랴오둥반도, 타이완섬,
   펑후제도 등 부속 여러 섬의 주권과 그
   지방에 있는 성루, 병기 제조소등을 영원히
   일본에 할양한다
4조 청나라는 일본에 배상금 2억 냥을 지불한다.

국사 교과사에서 보신 적이 있으셨겠지만
청일전쟁 이후 체결된 '시모노세키 조약'의
내용입니다.

1조는 일본의 조선 강제 병합을 위한 사전
수순이었고요..

2조는 일본이 본격적으로 제국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랴오둥 반도는 일본 육군의 대륙 진출을 위한
발판이었고 타이완은 일본 해군이 태평양과
중국 남부로 진출해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교두보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4조! 4조는 이후 일본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조항이었는데요..
중국이 지불해야 하는 2억 냥의 돈은 중국의
1년 예산의 세배 일본 예산의 네 배 ! 청일전쟁
비용의 두배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일본은 전쟁에서 이겨 그 배상금으로 전비를
충당하고 다음 전쟁을 위한 종잣돈을 만드는
사이클을 맛보았던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일본의 완벽한 승리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복병이 튀어나오게 되는데요
바로 러시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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