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의 승리는 파키스탄의 승리?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한 후 뒤에서 웃음
지으면서 표정관리가 안되는 나라가 있는데요
바로 파키스탄 입니다.
탈레반을 몰래 키우고 훈련시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 파키스탄이라고
하는데요.. 결국 탈레반의 승리는 파키스탄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고 해요..
'미국의 도움으로 아프간에서 미국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라는 아이러니 한 상황인데요..
파키스탄은 미국과 탈레반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이중플레이를 하던 국가였던 것이었습니다.
독립 이후 파키스탄의 행보
파키스탄이 인도와 분리 독립한 시기로 돌아가
보면 파키스탄은 원수지간이 된 인도에 비해
인구도 적고 영토도 작아 불안해했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믿을만한 뒷배가 필요했었지요.
당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급속히
냉전체제로 들어가게 되면서 결국 미국과 소련
둘 중 하나를 택했고 했던 파키스탄은 미국 쪽으로
줄을 서게 됩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파키스탄은 미국에
접촉해 소련을 견제하려면 소련과 가까운
자신들의 영토가 필요할 것이라며 미군을 위하여
공군기지 등 영토를 개방할 테니 원조를
요청하였는데요..
미국은 한 번에 소련, 중국 인도를 견제할 수 있고
중동, 중앙아시아 지역을 관리를 하는 데 있어서
파키스탄이 주요한 전략적 요충지로 사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파키스탄에 원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 하던 중이었던 1963년!
파키스탄은 인도와 다시 한번 전쟁을 하게 되는
상황이되었고 미국은 중국이 베트남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오는 것을 막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을 더욱 강하게
견제하기 위해 인도가 필요해졌고
인도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중지하게 되는데요..
한마디로 미국이 파키스탄을 버려버리는 바람에
파키스탄은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된 것이었어요
핵무기를 향한 집념
'정말 국제관계에서는 믿을만한 나라는 하나도
없구나'를 느끼게 된 파키스탄이 기댈 곳이라고는
핵보유 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러던 와중에 1971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분리 독립하게 되면서
파키스탄은 핵무기에 대해서
더 조급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 파키스탄의 부토 총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 우리는
풀과 나무를 뜯어먹고 살게 될 것이다"
파키스탄의 절박함이 묻어나는 대목이지요..
파키스탄은 프랑스로부터 핵무기 제조기술을
구매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면서 자체적으로는
중국과 리비아의 도움을 받으며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게 됩니다.
파키스탄의 이러한 행보에 미국은 계속해서
경고 사인을 보냈지만 파키스탄은 두루뭉술하게
넘기며 연구를 계속하던 사이
1975년 인도가 핵무기 개발에 성공합니다.
미국은 파키스탄도 핵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우려해 더욱 강력하게 압박을 하지만
파키스탄에서 쿠데타로 부토 총리를 몰아낸
군부세력 조차도 핵무기는 반드시 보유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이 파키스탄을 계속 주시하면서
제재와 압박을 가하고 있던 1979년 뜻밖에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바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었습니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1979년 소련이 아프간을 침공하면서 파키스탄과
미국은 공동의 적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은 공산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소련을
아프간에서 몰아내야 했고.. 파키스탄 입장에서도
아프간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가 될 수도 있으니
둘은 힘을 합쳐 아프간에 소련을 저지해야 하는
것이었는데요...
이때 파키스탄은 자신들의 힘으로는 소련을
막아 낼 수 없음을 깨닫고 신의 힘에 의존이라도
하려고 열심히 신전을 지어 기도를 합니다.
이때 새롭게 만든 신전에서 원리적이고 전통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학생들'이라는 의미를 가진
탈레반 이었던 것이었습니다.
1981년 이 되어서는 미국은 300억 달러의 무기를
지원하는 상황이 되는데요 아프간에 있던 이슬람
전자들을 일컫는 무자헤딘들은 이렇게 미국이
지원한 무기를 가지고 소련에 대항했던 것이었습니다.
이때 미국이 전해준 무기 중에 제일 유명한것이
알라의 요술봉이라고 불리는 RPG-7이죠..
그리고 미국은 파키스탄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주었는데요..
1984년 파키스탄은 우라늄 농축에 성공하였으며
1987년에 핵폭탄 보유에도 성공을 합니다.
그리고 1998년 인도가 몇 차례 핵실험에 나서자
파키스탄은 숨겨놨던 핵폭탄을 가지고 한꺼번에
5번의 핵실험을 감행하게 하는데요..
이렇게 공식적으로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게 됩니다.
미국은 다시 피 키스탄에 제제를 가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탈레반의 탄생과 아프간 침투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많은 아프간 인들이
파키스탄으로 도망쳐 내려왔는데요 이때
접경지역을 지키던 파키스탄 군 지휘관인
'나술룰라 바바라' 는 망명자들 중에서 500 명을
골라 훈련을 시키고 다시 아프간에 투입해보았는데
이들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웠다고 해요..
1993년 내무부 장관이 된 바바라는 본격적으로
이슬람 사원에서 공부 중이던 교리로 무장한
학생들 즉 '탈레반'들을 훈련시키고 무장을 시켜서
아프간에 투입하게 되는데요..
소련이 물러나고 자기들끼리 내전에 휩싸인
아프간에 갑자기 등장한
탈레반은 무자비하게 다른 군벌들을 처리하고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게 됩니다.
파키스탄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지원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니 자신들의 양아들이
다른 나라 왕이 된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지요..
파키스탄은 바로 탈레반 정부를 공식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프가니탄의 탈레반은 다른 무슬림을
숨겨주었고 여기저기 다른 나라에서 테러를
일삼던 '오사마 빈 라덴'의 '알카에다'까지 지원하는데요..
이 때문에 국제적인 골칫거리가 되게 됩니다.
미국은 파키스탄에게 탈레반을 압박해 알카에다를
내놓도록 하라고 하지만 파키스탄은 적극적으로
탈레반에 대한 압박을 가하지 않았고
미국이 직접 탈레반에 대한 미사일 공격에 나서자
오히려 이레 반대하며 미국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당시 성난 파키스탄 군중이 폭력시위를
하고 있을 때 파키스탄 군부는 미국 대사관에 있던
파키스탄 측 경비인력을 빼버리면서 미국 대사관에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다시 악화일로를 걷게 되는데요.. 당시 미국은 탈레반과 파키스탄의 밀접한 관계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때 또 한 번 파키스탄의 운명을 가르는
큰 사건이 터지는데 바로 911 테러입니다.
911 테러. 다시 필요해진 파키스탄
911 테러 이후 알카에다와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고 있던 탈레반과 이를 비호하는 듯한
파키스탄에 대하여 미국의 협박은 이제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수준이었고 파키스탄은 못 이기는
척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는 길을
내주기로 합니다..
물론 파키스탄 내부에서는 같은 무슬림이자
자신들의 형제라 여기던 탈레반을 치러가는
미군에 협조하는 것에 대해 반기를 드는 사람도
많았지만 파키스탄이 하지 않으면 미군은 결국
인도와 함께 파키스탄도 공격할 대세였으니
파키스탄을이석기시대로 돌아가기 싫다면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파키스탄이 길을 열자 그동안 핵보유 때문에
실행되어 왔던 미국의 제재도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국제사회는 암묵적으로 파키스탄의 핵보유를
인정하게 됩니다.
아프간으로 가려면 파키스탄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기에 미국은 파키스탄의 협력이 반드시 필요했고
파키스탄은 미국에 공군기지 등을 제공하면서
한편으로는 몰래 탈레반을 지원하기도 하는데요..
한 번은 미국이 파키스탄이 이중플레이를 하는
것을 확인하고 이를 강력히 경고하자
파키스탄은 또 자국 내 있는 탈레반을 토벌하기도
하고 탈레반도 파키스탄에 보복 공격을 가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아프간 공격에 대하여 파기스탄내
여론은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 다수였고
파키스탄은 미국의 눈치에도 불구하고 탈레반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파키스탄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파키스탄 땅을 이용하지만 파키스탄에게는 어떠한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는데요..
실제로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러 갈 때도
파키스탄은 이 정보를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미국과 파키스탄의 관계는 애메모호한
상황으로 계속 이어져오고 있었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결국 미국이 아프간에서
철수를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20년의 미군의 아프간 주둔 속에서 승리자는
탈레반과 그 뒤를 바 주었던 파키스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아프간에서 자신들이 길러낸 탈레반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게 되면서 파키스탄은 뒤에서
숨죽여 웃음을 짓고 것을 생각하니 참 섬뜩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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