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파키스탄의 탄생 ! 인도와의 분리독립 과정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9. 4.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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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인도 지배


인도 대륙을 하나의 국가로 만든 것은 안타깝게도
외부에서 들어온 나라 바로 영국이었습니다

영국은 1700년대 중반부터 인도 지역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고 1857년 세포이 항쟁을 진압한
이후 영국령 인도제국을 선포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인도 대륙은 하나의 단일 국가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영국령 인도


영국의 식민지 영토로 묶이면서
하나의 통일체로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어요.

사실 1857년 인도인으로 구성된 영국의
용병이었던 세포이들의 대규모 항쟁이
터지기 전까지 영국은 인도를 직접 통치하지
않고 '동인도 회사'라는 민간기업을 통해
간접적인 관리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영국은 이른바 문명화라는 이유로 인도의
전통적인 생활문화와 촌락 체제를 해제하고
자신들의 법과 행정체계를 인도에 도입하려고
했는데요 특히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하기 위해
많은 선교사들을 파견하기도 했다고 해요..


영국인은 인도인들을 인종적으로 차별하고
있었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인도는 이때까지도
남편이 죽어서 화장할 때 아내가 불길에 뛰어
같이 죽어야 하는 풍습인 '사티' 라던가
어린아이를 강제로 시집을 보내는 관습 등
영국이 보기에 인도엔 아직도 미개한 풍습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사티


영국인은 문명화되어 있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
인도인과 자신들 사이에 선을 긋고 그들에
대한 심한 차별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그들의 종교나 생활에 대한
인식을 가볍게 생각하던 바람에 발생한
세포이 항쟁에 큰 충격을 받은 영국은
그동안의 '동인도 회사'의 강업적인 통치 방식을
전면적으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는데요..

일단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철수시키고 영국령
인도제국을 설립함으로써 '빅토리아 여왕'이
파견한 총독을 통해 인도를 직접 통치하기 시작
하였고 인도인들의 종교와 문화를 기존보다 더
보장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렇게 영국은 인도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생활관습 면에서의 자유를 더욱 보장해 주는
방향으로 통치방식을 변화해 나가게 되는데요..

다양한 공공영역의 업무들이 인도인들에게
맞기 기도 했고, 자신들의 종교나 생활방식에 대한
규제를 영국이 완전히 포기한 것처럼 보이자
식민통치에 큰 반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인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힌두교도들 입장에서는 이슬람교도들의
무굴제국에서
기독교 국가인 영국 제국으로 통치자만
바귀었을뿐 이전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슬람교도들의 생각은 달랐을 거라고
해요.. 영국이 들어오기 전까지 자신들이 이 지역의
지배계층이었으니 까요..

인도 국민회의


19세기 후반 무렵이 되면서 인도에서도 서구식
교육을 받은 지신인 계층들이 급증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좀 더 진보된 양식으로 반영국
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우리도 이제 배울만큼 배웠으니 그만 우리를
무시하고 영국은 인도에서 나가라"
라는 것이었습니다.

인도 국민회의

점점 시식인들이 늘어나고 반영국 시위가
늘어나자 이들의 불만을 잠재울 목적으로
영국은 인도인들의 정당인 국민의회를 만들어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주는데요

이 국민회의는 오히려 반영국 활동이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는 도구로 커버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꺼내 든 카드는
바로 내부 분열 작전이었는데요..
디바이드 앤 룰 (Divide and Rule)이라고 불리는
갈등 조장 책이었습니다


뱅골 분할령 ( Divide and Rule )


1905년 영국은 뱅골 분할령을 발표합니다.
당시 뱅골 지역 동쪽은 대부분 무슬림이 살고
있었고 서쪽은 힌두교도들이 살고 있어
같이 지역임에도 서로 이질감이 있었는데요

뱅골분활령

영국은 이 지역을 행정편의 를 위해
분할한다고 발표했던 것이었습니다.

인도 내 힌두교도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즉각
영국이 인도를 분열시키고자 한다고 반영국
감정을 불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이 인도인들끼리 싸우도록 갈등을
유발하고 자신들에 대한 반감을 서로에게
돌리고자 한다"는 것이었고
많은 인도인들은 이에 호응하였습니다

전인도 무슬림 연맹


그런데 슬프게도 이러한 영국의 술책은
이슬람교도들에게 먹혀 들어가는데요..
이슬람교도들은 오히려 이를 환영하고 그들만의
조직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06년 결국 이슬람교도들은
힌두교도들이 많았던 인도 국민회의 분리되 나와
그들만의 독자적인 정당인 "전인도 무슬림 연맹"을
창당하기에 이릅니다.


사실 갈등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힌두교도들이
계속해서 전국에서 시위를 일으키자
영국은 1911년 다시 뱅골을 통합하겠다고
발표하지만 이번에는 무슬림들이 영국은 대놓고
이슬람을 차별한다고 시위를 합니다.

이때부터 이미 인도는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1,2차 세계대전 속 인도의 독립운동


이렇게 인도가 급속히 분열되어 가고 있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전시 상황 속에서 영국은 인도인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면 인도에 자치권을 보장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고 이에 속은 100만이 넘는
인도인들이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영국이 이런 약속을 지킬 리가 없지요..

전쟁이 끝난 후 영국은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인도인들이 반발하여 시위를 벌이자 이를
강압적으로 제압하기 시작하였고
간디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해
나가게 됩니다

여기서 '전인도 무슬림 연맹'은 혹시나 독립이
될 경우 자신들이 힌두교도들에게 차별을 받을
것을 두려워해 별도의 독립운동을 전개해
나가는데요.. 이슬람 진영의 독립운동을 이끌던
사람이 '무하마드 알리 잔나'였습니다.

무하마드 알리 잔나 와 간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도 간디를 중심으로 한
인도 독립운동 세력은 전쟁 참여를 반대하고
있었지만 무슬림 연맹은 분리독립에 대한
영국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참전을
지지하기도 하였습니다

두 개로 나눠진 인도 대륙의 독립


1930년에 접어들면서 '전인도 무슬림 연맹'은
인도에서 분리독립을 원하는 이슬람교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영국과 힌두교도들이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거듭나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에서도 인도 독립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이미
영국도 '무슬림 연맹'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상항이 되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인도 내부적으로는 분리독립을 반대하는
힌두교도들을 비롯한 비무슬림 진영과 과
분리 독립을 원하는 무슬림 진영으로 찢어져
끊임 없는 유혈사태가 벌이지고 있었어
이미 둘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 놓는다는 것인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영국은 두 개의 별개의 국가로 독립
시키기로 결정을 합니다.

1947년 8월 14일 파키스탄이 별개의 국가로
독립을 하였고
1947년 8월 15일 인도도 영국으로부터 독립
함으로써 이렇게 원수지간이 되어버린
두 국가가 공존하게 돼 어렸습니다.

그리고 뱅골 분할령 당시 동쪽 이슬람 지역으로
되어있었던 동 뱅 골지역은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으로 독립하여 동파키스탄이 되었는데요
동파키스탄은 다시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 독립하여 방글라데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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