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홍범도 장군의 귀한 (1).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간도참변,대한독립군단.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8. 2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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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귀환


2021년 8월 홍범도 장군의 위해가 대한민국으로
봉환되면서 홍범도 장군은 78년만에
광복된 조국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동안에도 홍범도 장군의 위해 봉환을 시도
했었던 적은 많았지만 북한측에서 고향이
평양지역이였던 홍범도 장군이 남한으로 봉환
되는것을 반대 하였고.. 남한 내에서도 당시
소련에서 돌아가신 홍범도 장군이 사회주의자
계열이였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해요..

홍범도 장군의 귀한을 맞아 그분의 발차취와
당시 항일 무장투쟁의 상황을 찾아 보았습니다.
(주된 내용은 역사강사 황현필 선생임의 유트브
강의를 참조하였습니다 )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전승국으로써
대한민국에 대한 수탈을 이어가고 있을때..
국내에서의 항일 투쟁도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요..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 농사를 짓고
있던 조선의 농민들이 들불같이 들고 일어나는
모습을 본 국외의 무장 독립 운동 단체들은
우리가 무장을 하고 투쟁을 했을때 조선의 농민들이
3.1 운동때 처럼만 봉기를 해준다면 충분히
무장투쟁의 승산이 있다고 생각을 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이후 적극적으로 무장투쟁에 나게
되는데 함경도 지역에서 명포수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홍범도 장군이 포수들을 모아 만든 대한독립군도
활발이 활동을 하기 시작하게 됩니다.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는 유인작전을 통해
삼둔자에서 일본군을 물리치게 되는데요..
이에 분노한 일본군은 홍범도 장군을 잡기위해
1,000 명의 월강추격대를 조직하여 두만강을
건너 봉오동으로 추격해 오게 됩니다

봉도동 전투


이때 1920년 6월 홍번도 장군은
최진동의 군부도독부군 안부의 국민회군과 함께
매복작전을 수행하여157명의 일본군을
전사시키게 되는데요.

당시 봉오동있에 살아가간 수많은 한들인에
이소식이 전해지면서 홍범도 장군은 국민적
영웅이 되게 됩니다.

훈춘사건. 청산리 대첩


봉오동에서 독립군에서 혼쭐이난 일본군은
북간도 지역에 있던 홍범도 장군의 대한독립군.
최진동의 군부도독부군 안부의 국민회군
김좌진 장군의 북로군정서군를 토벌하기 위해
1920년 9월 훈춘사건을 조작하는데요..

일본은 중국의 마적단을 매수해서 중국에 있는
일본 영사관을 공격하게 시켰고 이로인해
만은 중군인, 한국인 그리고 일본인이 사망하게
됩니다.

일본은 사건을 가지고 일본인들을 보호하겠다는
이유로 함북에 주둔하던 나남사단 1개 연대를 북간도
지역으로 들어와 홍범도 장군을 포위하게 합니다.

봉오동의 포위를 뚫고 청산리 방향으로 이동한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은 1920년 10월 약
일주일동안 일본군과 10여 차례의 전투를 벌이며
약 1200 여명의 일본군을 사살하게 된는 것이지요..

간도참변 (경신참변)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대패를 당한 일본군은
이들을 막을 다른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데요..
잔혹한 이들의 방법은 간도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한인 남자를 말살하겠다는 것이였습니다.

당시 독립군들이 일본군을 피해 도망가다니다
보면 간도에 살고 있던 한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오 있었는데요..

도망을 가다 무기를 땅게 묻고 현지에 살고 있던
한인의 집으로 도망쳐 그집 아들인척 하며
농사를 짓고 살기도 하고 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간도지역의 남자 10명을 죽이면 그중에
2~3명이 독립군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간도의 한인들을 죽였고 당시 3~4만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대한독립군단


간도의 한인들이 무참히 살해당하고 피해을
당하는 모습을 본 독립군들은 이런 참변을 계속
지켜보고 있을 수 없더 간도를 떠나

밀산부 한응동 으로 모여들게 됩니다,
이때가 1920년 12월 달이였기 때문에 혹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이동할 수 밖에 없었고
나무 껍질과 양초를 씹먹으며 이동했다고 해요..

동상으로 떨어져 나간 손가락으로 나무나
벽에 "대한독립" 이라는 글씨를 적어놓고 이동하면
뒤따라 오던 독립군들이 그걸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가 있기도 합니다.

밀산부 한흥동에 모여든 독립군들은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게 되는데요..

대한독립군단 총재는 북로군정서 총재던
서일 이였고 북로군정서 총사령관이 바로
김좌진 장군 이셨던 것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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