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

일본 에도시대.. 17세기 일본 발전의 계기.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5. 18.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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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어떻게 조선을 침략하고 아시아를
식민지화 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부를 축적해서 아시아에서 제일먼저
근대화에 성공할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여러가지를 한번 찾아봤습니다.

일단 일본의 당시 통치체재는 막번체제였어요.
허울뿐이던 일왕의 위임을 받아 일본을
통치하는 대장군을 쇼균이라고 하였고
쇼균이 있는 곳을 막부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쇼군에게 영지를 하사받아 그 지역을
다시리는 사람을 '다이묘' 그 땅을 '번' 이라고
했었으니 이 체제가 막번체제 인데요.
.

막번체제

사실 에도(지금의 도쿄) 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도쿠가와 가문을 견재하고자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에도로 몰아내면서 도구카와 가문의
영지가 되었습니다.

당시 에도는 비만 오면 강이 범람을 했고
해안은 뻘밭이 길게 늘어서 있어 항구로 사용하기
어려웠으며
무엇보다 우물을 파기만 하면 소금물이 올라왔기
때문에 마실물이 부족한 낙후된 지역 이였습니다

그래서 도구카와는 멀리서 물을 끌어오려고 하는데요..
이때 멀리서 깨꿋한 물울 끌어오는것을 상수,
쓰도 더러워진 물을 흘려 보내는것을 하수라고 하였고
여기서 지금의 상하수도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에도시대 상하수도 유적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은 다시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져 전쟁을
하게 되는데..

임진왜란에 참여하지 않아 세력을 온전히 보전한
도쿠카와 이에야스는 일본 역사에서 최고로
중요하며 '천하를 건 전투'라고 불리는 1603년
'세키가하라 전투' 에서 승리하고 쇼균이 되면서
자신의 근거지였던 에도에 막부를 열게 됩니다.

전국을 재패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는
해결해야할 두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다이묘들을
견제하는것,
두번째는 에도를 수도에 걸맞게 개발 하는것
이였습니다.

이를 위해 실시한 것이 바로
'천하보청' 과 '참근교대제'인데 이 두가지 정책이
의도치 않게 일본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게 됩니다.

[천하보청]
당시 다이묘 들은 전쟁시 쇼군에게 군사적으로
지원을 할 군역의 의무만을 지고 세금을 바칠 의무는
없었는데요.. 도쿠가와는 이전의 군역의
의무을 확대해서 성곽축성 , 제방 , 도로건설등
사회기반 시설 건설에도 다이묘가 인력과 자재를
제공토록 하였고 이것이 바로 천하보청입니다.

다이묘가 이러한 의무를 위반할시 쇼균은
다이묘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권한도 가지게
되면서 일본전역을 간접적으로 통치하게 됩니다.

에도 개발

이러한 천하보청의 발령으로 일본전역에
엄청난 규모의 인프라 건설 사업이 70년 동안
집중되었고 특히 에도는 당시 다른 어떤 유럽의
도시보다도 개발된 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참근교대제]
참근교대제는 일종의 인질제도인데요..
전국 다이묘를 불러모아 일정기간동안 에도에
서 보내게 하는 제도로. 1년을 에도에서 보내고
다음해는 각자의 영지에서 보내게 하는 제도 입니다.

에도성에 모인 다이묘

그런데 이게 말이 교대지 1년마다 수백 km 를
왔다갔다 해야 했고 몇달을 거쳐 오가야 했으니
절대 쉬운일이 아니였습니다.

참근교대는 적게는 100명에서 많게는 500 명의
수행단들이 이동하는데 이때 소요비용은
독자적인 징수권을 가지고 있는 다이묘가 전적으로
부담해야 했습니다.

만약 예정된 날짜보다 하루라도
늦게 도착 한다면 막부의 질책과 막대한 비용손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각 다이묘 들은 선발대를 보내
도로 사정이 열악하면 스스로 보수를 해야 했습니다
또한 참근교대 행렬은 각 다이묘의 체면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다미묘들은 더 행렬에 신경을
써야 했고요...

참근교대 행열

당시 다이묘들이 이동할때 드는 비용이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한다면 하루 평균 3~4억엔
우리돈 30억에서 40억이 넘는 경비가 이동에만
소요 되었고... 거기다 에도 체류비, 관료들에
대한 선물에만 수십억이 더 들었다고 합니다.

이 금액은 평균적인 다이묘의 수입에 절반이
되는 막대한 액수 였는데 이러한 다이묘가 전국에
270 개가 있었으니 이들이 길에서 뿌리는 돈이
매년 수조원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누군가 돈을 뿌리면 누군가는 돈을 벌겠조?
참근교대를 통해 일본 주요 도시의 상인이나
노동자 들이 큰이익을 벌게 되었습니다.
특히 육상, 해상 교통로가 대대적으로 정비되었고
숙박시설을 위한 역참도시가 생겨나 각종
주변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다이묘들이 거두어들이는 세금이 다시 전국의
상인과 노동자 들에게 순환되는 이 전례없는
현상은 부유층의 소비지출을 의무적으로 확대해
엄청난 낙수 효과를 낳게 되었고 경제활성화에
직접적이고 확실한 효과를 낳게 된 것이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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