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난징대학살 원인, 진행과정. 반성없는 뻔뻔한 일본 (혐사진 없음)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9. 2. 12:30
반응형

난징대학살의 원인


상하이 전투에서 10만의 병사를 잃고 어렵게
승리를 거둔 일본은 1937년 12월 13일 수도
난징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악몽같은 전투를 치르고 난징에 입성한
일본군은 사람이 아닌 악귀였습니다.

난징으로 들어오는 일본군


1937년 12월 13일부터 1938년 2월까지 6주간에
걸쳐 일본은 군대를 동원해 중국인을 무차별
학살하였고 이로 인해 30만여 명의 중국인이
무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난징 대도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난징사건'이라고 부기도 하고
서구에서는 '아시아의 홀로코스트'라고도 합니다.


이유는 앞서 얘기한 대로 상하이 전투에서
중국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친 일본군은
중국의 독일식 사단의 참호 앞에서도 닥치고
돌격을 외치며 공격하다가 심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중국인에 대한 적개심에 악이 받칠 대로
받쳐 있는 상태로 난징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어요..

탕셩즈

난징이 함락되기 전날 결사항전을 주장하던
중국군 사령관 탕셩즈는 자신의 휘하 부대와
난징성에 고립된 시민들을 뒤로한 채 양쯔강을
가장 먼저 건너 도망쳤고 미쳐 피난 가지 못하고
남아있던 50~60만 난징 시민들과 군인들은
공황상태에서 6주 동안 일본군에 의해 처참히
학살을 당하게 됩니다.

자행된 학살과 강간


일본군은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중국군 포로
뿐 아니라 젊은 남자들을 색출하여 닥치는 대로
끌고 가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중국군 포로와 민간인 남자들은 일본군의 총검술
훈련용으로 되거나 목 베기 시합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고.. 일본군은 총알을 아낀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을 산채로 파묻어 생매장하거나
칼로 난도질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군은 누가 먼저 100명을 살해하느냐를
놓고 대회를 열어 포상까지도 했는데 당시
일본 언론은 이를 예능 프로 소개하듯 보도하기도
했다고 해요.. 이 대회의 가담자 무카이 도시아키와
노다 쓰요시는 1948년 중국에 의해 총살당하게
됩니다.

100인 참수 경쟁 기사


이러한 잔인한 인간사냥이 극에 달하면서
일본군은 여자들이라고 그냥 가만히 두지
않았겠지요.. 일본군은 중국 여성을 성노리개로
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참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불쌍한 건 힘없는 어린아이들과
여자 들은 것 같습니다.

10살도 채 안돼 보이는 아이부터 70대 노파까지
그 대상을 가리지 않았고.. 수녀가 비구니 등
난징의 여성들을 보이는 대로 능욕하고
살해했습니다.

일본과 중국의 현재 입장

중국은 7만 평 규모의 난징대학살 역사관을
설립하여 매년 12월 13일 추모식을 가지며
일본의 만행을 국제적으로 홍보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

하지만 일본은 일부 양심적인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극우 및 우익인사들은 난징대학살은 없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으며 심지어 교과서에
난징대학살을 언급하지 않거나 '난징사건'으로
사건을 축소하는 등 언급을 금기시하고 있어
있는데요..

"전쟁터였으니 사람들이 많이 죽었죠..
하지만 학살이나 강간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역사학자의 주장은 대충 이러합니다.
그들은 중국이 난징학살의 증거라고 내세우는
사진도 날조라고 의심한다고도 한다고 해요..

일본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한 줄밖에 배우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중국 어린이들은 매우
상세하게 배우고 있으니 이러한 간극이 이후에
어떠한 상황으로 발전하게 될지 우려가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난징대학살'뿐만이 아니지요.. 독도문제에
가려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안부 문제,
강제 징용 문제, 관동대학살 문제 등등 우리에게
저지른 악마 같은 짓들에 대한 증거가 엄연히
존재하지만 처절히 사과해야 하는 일본은
항상 역사를 왜곡하기 급급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의 치부를 그저 덮어두기만
하려는 이러한 일본인들의 습성은 정말
소름 끼치는 것 같아요..

일본이 지금 코로나19 나 올림픽을 대응
하는 것 보면 이미 망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아이 들게 이렇게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미래에 얼마도 도움이 될까? 생각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