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국제연맹에서 삼국동맹으로.. 독일과 친해진 일본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9. 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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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아가 된 일본


중국이 장기전으로 태세를 전환하는 것을 본
일본은 '거국일치'라고 말하며 전시체제로
국가체계를 개편을 했습니다.

워싱턴 해군 조약 탈퇴, 국제연맹 탈퇴로
국제사회에서 멀어진 일본은 이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야 했는데요.. 아무래도 정치적인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국민들을 설득
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동아공영권
이였어요..

대동아공영권 우표


중일전쟁이 시작되고 1년이 지난 1938년
'고노에 후미나로' 수상은 동아협동체론을 들고
나왔습니다.

"동아영원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신질서의
건설이 이번 전쟁의 목적이다. 일선은 일본의
촉구 정신에 연원 하며 이를 완성하는 것은
일본 국민에게 지워진 영광스러운 책무이다"

간단히 말해 동아시아 지역적 운명공동체이며
이 운명 공동체는 천황을 필두로 하여 공동의
국방, 일체화된 경제, 한자 문화권의 동질화된
문화 공동체를 형성해 미국과의 세계 최종전에
대비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고요..

조선과 마찬가지로 중국에 대한 일본의 독점적
지배를 선언한다는 뜻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나온 즉각적인 반응은 이렇습니다.

"어떠한 나라도 자신의 주권에 속하지 않은
지역에 신질서를 건설한 자격이 없으며 문호
개방 원칙을 무시한 신질서는 인정할 수 없다"

러일전쟁 직후부터 일본의 만주 점령과
중국 진출에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던 미국이
드디어 입을 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중국에 대한 차관 제공 등 중국
원조 방침을 밝혔는데요 이는 그간 보여줬던
경고 수위를 넘어서는 강력한 반응이었습니다.

미국의 압박은 점점 거세져 1939년 7월에는
미일 통상 항해 조약의 파기를 선언합니다.

1940년 기준 일본의 총수입액 21억 엔 중
19억 엔이 미국에서 수입한 것을 보면 이 조치가
일본에 얼마나 큰 타격이었는지 알 수 있는데요

만약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일본은 전쟁
수행에 없었서는 안 되는 석유와 철강의 수입이
모두 막히고 말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일본은 국제 미아가 될 판이었어요..

삼국동맹 ( 히틀러 독일과 친해지는 일본 )


일본을 군사강국으로 만들어준 영국은
위싱턴 군축조약으로 떠나갔고 국제연맹의
탈퇴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입지는 좁아질
재로 좁아진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일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독일이었습니다.
당시 일본과 독일은 동병상련의 입장이었어요

독일군 일본군

베르사유 조약을 탈퇴하고 국제 사회로부터
문제아 취급을 받던 독일은 자신만의 파트너가
필요했고 일본 역시 마 찬기 지였습니다.

이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졌고 1937년 11월
일본, 독일, 이탈리아는 삼국 방공 협정을
맺었는데 바로 삼국동맹의 전초 단계였습니다.

당시 일본 육군은 소련을, 해군은 미국을 가상의
적으로 상정하고 있었는데요..
일본 육군은 독일, 이탈리아와 손잡고 소련에
맞서자고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1938년 8월 독일은
소련과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는 거지요.ㅋ


소련을 가상의 적국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최대의 파트너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독일이
소련과 손을 잡은 것이었지요..
일 번은 천둥벌거숭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여기서 다시 한번 180도로
자신들의 얼굴을 바꾸는데요..
이런 이중적인 면모는 일본의 특징이지요..

이제는 "독일 , 이탈리아, 소련과 함께 미국에
대항하는 대미 동맹을 결성하자~"라고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대상이 누구라도 전쟁만 하면 된다는 것인지
당시 일본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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