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이야기/일본의 성장과 몰락

일본관동군, 만주국, 몽골 그리고 소련. (노몬한 전투)

기차타고시베리아 2021. 9. 16.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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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과 몽골


1932년 일본이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우자
소련은 심기가 불편해졌습니다
'만약 일본이 독일과 손잡고 양면에서 공격해
들어온다면 소련은 이를 어떻게 막내야 할까.?'

이러한 고민 끝에 눈에 들어온 것이 것이 바로
근대국가로 재탄생한 몽골이었습니다.

러시아의 반혁명 분자였던 '운게른 남작'이
혁명 세력에 패퇴한 뒤 몽골로 피신했고 몽골은
운게른 남작의 도움으로 독립을 선포하면서
300년 동안 이어져온 청나라의 지배에서 벗어
나게 되었는데요..
몽골의 지정학적 위치가 절묘하게 애매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만주국이란 괴뢰국을 만들었고
그 여세를 몰아 중일전쟁을 일으키고 중국과의
전쟁이 정리되면 병력을 모아 러시아로 쳐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상황이었는데요..

일본 관동군이 세운 만주국은 호시탐탐 몽골과
소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소련으로
쳐들어 가기 위한 발판으로 몽골을 노리고 있었고
소련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몽골이 필요했던
것이었어요..


몽골 입장에서는 일본 관동군은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는 망나니 같아 보였지만 이들을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자진들에게는 없었으니
굴욕을 감수하더라도 소련의 위성국이 되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소련과 몽골은 상호보호조약을 맺었고
일본 관동군의 만주국과 대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노몬한 전투 (할힌골 전투)


두 차례의 소구모 전투 그리고 759회의 국경 출돌.

두 번의 전투에서 패배한 소련군은 절치부심했고
승리한 관동군은 자신감에 차이었던 상황에서
노몬한 지역에서 다시 한번 큰 충돌이
일어나는데요...

관동군은 노몬한 지역에서 소련군과 충돌이
있을시 마음대로 국경선을 정하고 소련이 국경선
주장에 의의를 제기하면 소련의 영토에 진입해
점령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뭐 한마디로 전쟁을 하겠다는 이야기였어요..

선공은 몽골이 시작을 했는데요..1932년
5월 11일 만주국군의 주둔지를 기습했습니다.
이를 빌미로 일본 관동군이 들고있어나게 되죠

이에 질세라 소련군도 1500여 명의 병력을 집결해
반격에 나섰는데요 병력은 일본군이 많았지만
화포나 장갑차는 소련군이 앞서있었습니다.


일단 일본군이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소련군 방어선을 돌파한 듯 보이기도 했지만
곧 소련군은 화력과 기동력의 우위 을 바탕으로 일본군을 우회 포위해 섬멸작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때 일본의 도쿄의 대본영이 등장합니다.

"중국 전선이 전개된 상황에서 소련과의 전쟁은
불가하다. 전선일 이중화했다가는 향후 전쟁
수행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었지만 이미 반미쳐있는
상태의 관동군은 이를 무시해버립니다.

관동군 '쓰지 마사노부'는 사령관이 없는 틈을
타 대규모 항공작전을 승인했고..

그 결과 6월 27일 77대의 전투기와 30대의
폭격기가 소련 영토에 있는 공군기지에 기습을
감행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뭐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을 정도지요..


일본의 항공 작전을 묵도한 소련은 그야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습니다.

국지적 충돌이면 몰라도 대규모 항공 공습은
소련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소련은 비장의 카드인 '게오르기 주코프' 장군을
일본과의 전투에 투입하게 되었는데요..

상승의 장군이라 불리는 주코프에게
원하는 병력의 두배를 주고 일본군을 박살을
내라고 명령합니다.

소련극동군 참모장, 몽골국가주석, 게오르기 주코프 (오른쪽)

이후 소련은 일본군 23사단의 돌격을 소련군은
압도적인 포병화력으로 밀어냈습니다.

소련군의 포병화력과 기갑전력이 일본군 보명을
덮쳤고 일본군은 총검을 착검하고 전차로
돌격했습니다.

일본군은 분전했지만 대세에는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였습니다.

결국 타격을 입고 궤멸한 일본군은 처음 공격을
개시한 국경선 쪽으로 밀려났고 소련군도
노몬한에서 멈춰 서면서 전투는 끝이 났습니다

소련군 전차

노몬한(할인골) 전투의 영향


노몬한 전투 이전만 해도 일본 군부는
미국과 싸우자는 남방공략파와
소련과 싸우자는 북방공략파로 나뉘어 향후 일본의 진로를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노몬한 전투 이후 북부공략파의 목소리는 작아
졌고 남방 자원 지대라 칭한 곳으로 치고
내려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과 전쟁을 하겠는고 자살에 가까운
승산 없는 전쟁에 몸을 던진 것이었지요..

만약 노몬한 전투의 패배가 없었더라면 일본은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고
소련을 침공했들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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